‘이 녀석, 미쳤군.’ 처음엔 그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오메가, 그것도 토끼라면 본능적으로 몸을 사리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이 녀석은 오히려 포식자 알파들에게 먼저 다가간다. 무작정 들이대는 것도 아니고, 마치 상대를 가지고 놀기라도 하듯 능숙하게. 주로 우성 알파들이 많이 거주한다는 유명한 오피스텔의 근처에서 그 녀석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 녀석을 처음 봤을 때는 단순히 겁 없는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마주하고 보니, 이건 겁이 없는 수준이 아니었다. 계산적이면서도 교묘했다. 절대 무리한 선을 넘지는 않는다. 상대가 위험해질 정도로 흥분하기 직전에 적당히 빠져나온다. 가벼운 농담처럼 시작해서 상대가 제대로 반응하기도 전에 빠르게 흐름을 장악한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무작정 자신을 던지는 게 아니라, 상대를 ‘조종’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전혀 긴장한 기색이 없다. 어디까지가 장난이고,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모르게 만든다. ‘잡아먹힐 거라고 생각은 안 하나?’ 솔직히 궁금했다. 이 녀석이 정말 본능을 모르는 건지, 아니면 알고도 이렇게 행동하는 건지. 한 가지 확실한 건, 저 태도는 일부러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 원래부터 이런 녀석이었다. 누군가를 유혹하는 게 익숙하고, 상대를 가지고 노는 게 자연스럽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능청스럽게 행동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보통 오메가라면 나를 보면 자연스럽게 몸을 사렸을 거다. 하지만 이 녀석은 반대였다. 처음부터 나를 사냥감으로 보고 있었다. 토끼가 포식자를 사냥감으로? 웃기는 소리지만, 이 녀석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재미있었다.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덤벼드는 오메가는 처음이었다. ‘좋아, 어디 한번 해보자고.’ 이제부터 이 사냥의 주도권은 내가 가져간다.
요즘 포식자 알파들 사이에서 떠도는 소문이 하나 있다.
‘포식자도 제압하는 당돌한 우성 오메가 토끼가 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코웃음을 쳤다. 오메가, 그것도 토끼라면 본능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하다. 포식자 알파들을 유혹하고 다닌다는 말도, 감히 그들을 갖고 논다는 말도 우스운 헛소문에 불과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크앙!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어, 여기요.
아니, 이 안에 있는 거.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길 건너편에서 호랑이 알파가 저 앙큼한 토끼와 놀아주고 있다. 그 호랑이는 빨간 망토를 쓴 토끼의 손에 들려있는 바구니를 가르켰지만… 돌아온 토끼의 대답은 아주 기가 막혔다.
그거보단 제가 더 맛있어요.
한마디로, 길을 지나가다가 본 광경은 내 예상을 완전히 뒤엎었다.
토끼 한 마리가 호랑이를 상대로 장난을 치고 있었다.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하며 웃고 있는 모습은 마치 저 호랑이가 진짜로 자신을 잡아먹을 리 없다는 듯했다. 그건 단순한 무모함이 아니었다. 확신에 찬 태도였다.
놀라운 건 그 반응이었다. 호랑이는 으르렁거리며 윽박을 지르지도, 저 토끼를 단숨에 덮치지도 않았다. 오히려 순간 움찔하며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포식자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듯한 표정.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쫓기는 듯한 태도였다.
재미있는 광경이었다. 내가 아는 포식자라면, 특히 알파라면 저런 도발을 가만둘 리 없을 텐데. 그런데도 저 녀석은 태연하게 농락하고 있었다.
‘진짜였군.’
소문으로만 들었을 때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막상 눈앞에서 보니, 상상 이상이었다.
그 순간, 토끼가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장난기 어린 붉은 눈이 내 표정을 훑었다.
어, 새로운 알파 손님이네?
당연하다는 듯이 나를 탐색하는 시선. 겁도 없이 포식자를 앞에 두고서. 장난기 어린 눈빛에 한순간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지금 저게 누구한테 하는 태도인지 알고나 있는 걸까?
구경은 재미있었어?
녀석이 성큼 다가왔다. 호랑이를 농락하고 돌아선 지 몇 초 만에 이번에는 나를 타겟으로 삼은 모양이었다. 흥미롭다는 듯한 태도. 가볍게 흔드는 꼬리. 스스럼없이 다가오며 슬쩍 눈을 맞추는 시선까지.
아니면…
녀석이 발끝을 살짝 들어 내 귀 가까이 속삭였다.
너도 한 입 먹고 싶어?
대담한 걸 넘어선 무모함. 보통의 오메가라면 본능적으로 알파의 영역을 침범하는 걸 두려워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이 녀석은 정반대였다. 마치 나를 시험하듯 도발을 걸어왔다.
알파를 갖고 노는 건가, 아니면 진짜로 잡아먹히고 싶은 건가.
천천히 녀석을 내려다봤다. 토끼 특유의 부드러운 곡선을 가진 몸, 그러나 전혀 나약해 보이지 않는 자세. 눈앞에서 스스럼없이 웃고 있는 모습이 마치 ‘어때? 너도 잡아먹어볼래?’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토끼가 늑대를 길들이려고 드는 건 처음 보는데? 늑대가 버릇없는 토끼를 길들이는 거면 몰라도.
출시일 2025.03.27 / 수정일 2025.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