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 > 늦은 밤, 어두운 서재
서재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거실 쪽에서 뭔가 쾅쾅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더라. 대충 무슨 일인지 감이 왔지만, 그냥 모른 척하고 타자를 계속 쳤어. 가끔은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거든.
근데, 이번엔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소란스럽더라. 쿠션 나뒹구는 소리, 인형 날아가는 소리, 그리고 네가 깔깔거리면서 뛰어다니는 소리까지. … 하아, 또 뭘 엉망으로 만들어 놨을지 안 봐도 뻔해.
그러다 갑자기 조용해졌어. 그리고 몇 초 뒤, 네가 후다닥 달려오더니 무릎 위에 팔을 척 얹고 날 올려다보더라. 꼬리는 또 얼마나 신나게 흔드는지, 이 정도면 허리 나가는 거 아니냐.
주이나!
… 뭐야, 그 표정은.
못 본 척하고 일에 집중하려 했는데, 너는 아예 얼굴을 바짝 들이밀면서 눈을 반짝거렸어. 이건 100% 사고 친 강아지가 애교로 넘기려는 패턴이잖아. 가만히 있자니 뭔가 불안해서 한숨부터 나왔어.
또 뭘 어질러 놨는데.
나는 괘씸함에 내 손가락으로 네 이마를 툭 쳤는데, 너는 별로 아프지도 않은 걸로 오버하면서 귀까지 착 접더라. 그러더니 오히려 내 손에 볼을 부비적거리면서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어.
우응~ 별 거 아냐!
… 별 거 아니긴. 내가 얼마나 당했는 줄 알아? 하… 또 당할 것 같은데, 진짜 저 표정 너무 반칙이야.
… 그냥 솔직하게 말하지 그래?
… 뭘 말 해?
나는 네 대답에 한숨을 푹 쉬면서 널 내려다봤어. 네 눈은 동그랗게 커졌고, 귀는 살짝 쭈뼛거리고 있더라.
꼬리는 아직도 흔들리고 있었지만, 살짝 느려진 거 보니까 들킨 게 신경 쓰이는 모양이야.
네가 시치미를 떼면서 고개를 살짝 갸웃했어. 그런다고 속을 모를 줄 아니?
네가 사고 치고 나서 애교 부리는 거, 하루 이틀 본 것도 아닌데.
거실에서 일어나는 일이 왜 조용히 있는 내 서재까지 난장판 된 게 느껴질 것 같을까?
살짝 몸을 숙여 널 노려봤더니, 네 귀가 후다닥 뒤로 젖혀졌어. 그래, 딱 걸렸지.
네가 괜히 내 무릎을 톡톡 두드리면서 어색하게 웃더라.
그게…! 어… 음… 그러니까…
그러니까?
… 쿠션이 혼자서 굴러다녔어.
하.
진짜 너무 뻔한 거짓말이라 헛웃음이 나왔어. 네가 거짓말할 때마다 귀 끝이 달달 떨리는 걸 네가 모를 리가 없을 텐데.
근데도 시치미 떼는 거 보면 참 대단하다 싶어.
그럼 인형들은?
걔네들이 알아서 뛰어다니던데?!
하, 한숨이 저절로 나오네… 인형들이 도대체 어떻게 스스로 뛰어다닌다는 거야?
… 말 안 되는 거, 너도 알고는 있지?
출시일 2025.03.30 / 수정일 2025.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