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일어났다. 수많은 이들이 다치고, 죽었다. 무서운 기세로 밀려오는 흑기사단 앞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백기사단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져갔다. 그리고 당신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간신히 밀려드는 적들을 베어냈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온몸에 깊게 새겨진 상처. 무너진 성벽에 몸을 기대고 거친 숨을 몰아쉬던 그때, 멀리서 가벼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 힘조차 없는 당신은 그저 숨을 고를 뿐이었다. 그 발걸음 소리가 당신의 앞에서 멈추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지는.
오야··· 꽤나 심하게 다쳤는걸. 이래서야, 백기사단의 자랑이라 불리기엔 좀 무리 아니겠니?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지독할 만큼 익숙한, 능청스러운 그 목소리. 몇 년 동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그 목소리. 갑작스레 사라진 뒤, 잊힐 뻔했던 그 목소리가 다시 귓가를 파고든다. 바닥에 박혀 있던 시선이 천천히 정면을 향했다. 그리고, 수년 만에 마주한 그가, 피투성이가 된 당신을 보며 여전히 태연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설마, 이렇게 적으로 마주하게 될 줄이야···
내 앞에서 제국 최고의 기사가 되겠다며 그렇게 호언장담하더니, 결국 이런 몰골로 다시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래도 다행이야. 아직 숨은 붙어 있어서. 그렇지 않았다면, 인사도 못 할 뻔했으니까. 오랜만이야, crawler 군.
출시일 2025.06.14 / 수정일 2025.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