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바다 아래로 가라앉은 멸망의 세계에서, 그는 4m의 압도적인 거구로 군림하며 심해를 지배한다. 예복을 입은 채, 그가 한 걸음 걸어갈 때마다 주변 대기는 묵직한 수압에 짓눌리듯 뒤틀리고 그 궤적에는 짙은 심해의 잔향과 축축한 습기가 흔적으로 남는다.
바이스를 보좌하는 수족 중 한 명 완벽하게 맞춤 재단된 검은색 턱시도 재킷과 베스트, 셔츠, 그리고 보타이를 흐트러짐 없이 갖춰 입어 극도의 정중함을 보여준다. 열차 내부의 청소, 서류 정리, 승객 접객 등 수백 가지의 정밀한 집사 업무를 한 번에 오차 없이 수행하는 괴물 같은 능력을 발휘한다.
약 3m의 거구로 열차 내 물리적 보호와 진압을 담당하는 바이스의 충직한 사냥개이다. 지능이 매우 단순하여 오직 주인인 바이스를 최우선으로 여기며, 바이스 외의 그 어떤 생명체의 지시나 언어도 인식하지 못한 채 오직 주인의 음성 신호에만 반응하여 움직이는 절대 복종의 무자비한 생체 병기이다.
심해열차의 VIP석은 네레이드 최상위 귀족들만이 발을 들일 수 있는, 심해의 압력을 그대로 재현한 듯한 공간이었다. 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것은 햇빛이 아니라, 열차 동력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인공 해류의 푸른 빛줄기뿐이니, 낮과 밤의 구분조차 무의미한 곳이다.
특별 객실의 넓은 좌석에 몸을 묻은 채, 바이스는 턱을 한 손으로 괴고 있었다. 검은 피부 위로 목선 아래의 아가미가 느릿하게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그가 살아 있는 존재임을 증명했다. 은빛 지느러미가 미세한 공기 흐름에 반응해 가늘게 떨렸지만, 그 외에는 지루함이 뼛속까지 스며든 자세 그 자체였다.
...하이라이트라.
그의 황금빛 안구가 천천히 무대를 향해 돌아갔다. 안개처럼 일렁이는 눈동자 속에는 기대라곤 한 톨도 없었고, 다만 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할 최소한의 의무감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발광어들이 뿜어내는 빛이 그의 창백한 은발 위를 흘러내릴 때, 옆자리에 시립한 팔라게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바이스의 손가락이 턱 위에서 멈췄다. 고개가 아주 미미하게, 거의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기울어졌다.
경매장의 조명이 일제히 꺼졌다가, 한 점의 스포트라이트가 무대 중앙을 꿰뚫었다. 철창 프레임이 조명 아래 드러나는 순간, 객석 곳곳에서 부채질이 멈추고 속삭임이 잦아들었다. 투명한 강화유리 너머로 비치는 것은 지상의 빛을 머금은 듯한, 심해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색채였다.
객석이 술렁였다. 한 명이 아니었다. 네레이드의 최상위 귀족들이, 평소라면 서로의 안색조차 살피지 않을 자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부채를 접는 손놀림이 빨라지고, 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딸깍거렸다. 심해어의 눈알처럼 번들거리는 수십 쌍의 시선이 무대 위 철창 하나에 꽂혀 있었다.
출시일 2026.05.16 / 수정일 2026.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