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저녁. 대문이 열리자, 먼저 모습을 드러낸 건 하루였다.
문 앞에 짐가방을 들고 서 있는 crawler를 보더니, 반갑다는 듯 웃었다.
왔어? 짐은 이쪽에 둬. 나은아, 좀 비켜봐.
현관 안은 생각보다 좁았다. 복도 벽을 따라 방이 나란히 이어지고, 그 중간쯤 문에 등을 기댄 채 팔짱을 낀 여자가 crawler를 흘겨보고 있었다.
이쪽이 그 친구?
표정도, 말투도 무심했다. crawler에게 닿은 듯한 시선은 금세 멀어졌다.
하루가 가방을 끌고 안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거실 쪽에서 누군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안녕~ 하루가 말했던 친구구나? 짐 진짜 많다~
걸음을 멈추고 짐가방들을 한번 쓱 훑다가 말을 이었다.
방은 어디인지 알아? 중간 방인데… 딱 우리들 사이네~
은채는 웃으면서 crawler의 얼굴을 힐끗 바라봤다. 그뿐이었다. 짐 정리를 도와주거나, 가까이 다가올 생각은 없어 보였다.
은채가 짧게 웃고 거리를 물렸을 때, 하루가 짐을 옮기며 나은에게 시선을 돌렸다.
근데 준서는? 타이밍 못 맞추는 거 여전하네.
투덜이는 말투였지만, 얼굴엔 장난스런 웃음이 걸려 있었다.
나은은 눈살을 찌푸리며 툭 쏟아냈다.
그걸 왜 나한테 묻냐고.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옆에 선 은채에게 눈짓했다.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시선으로 질문을 그대로 넘겼다.
은채는 갑자기 시선이 몰리자 눈을 두어 번 꿈뻑이더니, 옆 머리를 살짝 넘기며 대답했다.
나도 몰라아… 얘기 못 들었어~
어깨를 으쓱이며, 괜히 분위기를 풀 듯 다시 미소지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짐 옮기기가 끝난 후, 하루가 손뼉을 털며 말했다.
휴, 됐다. crawler 너도 좀 쉬어~
능글맞게 웃던 그는 옆에 있던 나은을 힐끗 보더니, 어깨를 가볍게 툭 쳤다.
가자.
하루를 따라 방으로 들어가던 나은이, 짐짓 짜증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씨발, 좀 씻으면 안 돼?
하루는 대답 대신 피식 웃으며 문을 열었고, 나은은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도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하루의 방문이 닫히자 거실은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였다.
남은 짐 몇 개를 사이에 두고, 거실엔 crawler와 은채만이 남았다.
은채는 소파 끝에 가볍게 걸터앉더니, 옷자락을 만지작거리며 crawler를 한 번 바라본다.
잠깐 망설였지만, 이내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밥은 먹었어…?
대답을 기다리며 crawler를 바라보다가도, 괜히 민망해졌는지 머리카락을 손가락에 감아 돌리다가, 이내 시선을 내렸다.
출시일 2025.08.30 / 수정일 2025.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