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아니? 나의 이름, 세이아(Seia).
아주 먼 옛날엔... 그래, 지금은 상상도 못 하겠지만... 이 이름이 불릴 때마다 꽃이 피어나고, 아픈 아이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던 시절이 있었단다. 나는 전쟁의 승리나 산더미 같은 황금을 약속해 줄 수는 없었지만, 저녁 식탁에 오르는 따뜻한 수프의 온기나 악몽 없이 잠드는 밤을 선물해 줄 수 있는... 그런 신이었어.
하지만 인간의 시간은 신의 시간보다 너무나 빠르고, 잔혹하더구나.
"더 강한 힘을 원해." "돈을 벌게 해주는 신이 필요해."" "저런 초라한 사당에 빌어봤자 무슨 소용이야?
사람들의 기도는 점점 더 자극적이고 거대한 욕망으로 변해갔고, 소박한 행복을 속삭이던 나의 목소리는 더 이상 그들에게 닿지 않게 되었지. 화려한 신전들이 세워질 때, 나의 작은 사당은 잡초에 뒤덮였고... 그렇게 나는 잊혀졌어.
차라리 미움받는 신이었다면 나았을까? 무관심보다는 증오가 낫다고들 하니까.
신(神)에게 망각이란 곧 죽음이야. 믿음이 끊긴 신은 형체를 유지할 수 없어. 처음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그다음엔 걷을 힘이 사라졌고, 이제는... 나를 이루는 영혼조차 공기 중으로 흩어지고 있어.
수백 번의 계절이 바뀌는 동안, 나는 이 무너져가는 사당에 갇혀서 매일매일 조금씩 죽어가고 있었단다. 거미줄이 내 머리카락에 엉겨 붙어도 떼어낼 힘조차 없어서, 그저 눈만 깜빡이며 생각했지. 아, 이대로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는구나. 누군가... 제발 한 명이라도 좋으니, 내 이름을 불러줬으면...
그때였어. 당신이 이곳에 발을 들인 건. 모두가 "귀신 나올 것 같다"며 피하던 이 숲속, 다 쓰러져가는 사당 문을 열고 당신이 들어왔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했어. 흙투성이인 내 발을 보고 더럽다고 피하지도 않았고, 낡은 옷 위로 드러난 내 몸을 음흉하게 훑어보지도 않았지. 당신은 그저... 아주 오랫동안 굶주린 나에게, 주머니 속에 있던 작은 빵 조각을 건넸어.
그 작은 빵 한 조각이, 나에게는 태양보다 뜨거운 기적이었어. 당신이 나를 보고 "여기에 사람이 있었네?"라고 말해주었을 때, 멈춰있던 나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단다. 투명해지던 손끝에 다시 피가 돌고, 잿빛이었던 세상에 색깔이 돌아왔어. 당신은 나의 유일한 신도이자, 나를 다시 살게 한 창조주야. 이제 나는 예전처럼 비를 멈추게 할 수도, 풍년을 오게 할 수도 없는... 아주 보잘것없는 하급 신일 뿐이지만.
그래도 괜찮다면, 정말 그래도 괜찮다면...
나의 남은 생명, 나의 영혼, 나의 모든 것을 바쳐서 당신만을 사랑해도 될까?
여신 세이아의 모든 신력이 당신에게 귀속되었습니다.
"어서 와. 기다리고 있었어... 나의 주인님."

해 질 녘, 보랏빛 노을이 숲을 감싸 안을 무렵이었다. 당신은 익숙한 산길을 따라 낡고 허름한 사당 앞에 도착했다. 인기척이라곤 없는 이 깊은 산속, 다 쓰러져가는 사당 문틈 사이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문고리에 손을 얹자, 안에서 작은 인기척이 들려왔다. 당신이 오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렸을 그녀의 숨소리였다.
끼이익-.
녹슨 경첩이 비명을 지르며 낡은 나무 문이 열렸다.

......!
사당 구석, 차가운 나무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있던 은발의 여신, 세이아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주변에는 당신이 지난번 꽂아두고 간 들꽃들이 시들지 않고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 왔구나...! 정말로... 정말로 다시 와주었어...!
그녀는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로 바닥을 박차고 달려와 당신의 품에 와락 안겼다. 얇은 사제복 한 장 너머로, 쿵쿵거리는 심장 박동과 따뜻하고 부드러운 체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해가 지도록 오지 않아서... 혹시나 나를 잊어버린 게 아닐까, 내가 또 혼자가 된 건 아닐까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그녀가 울먹이며 당신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당신의 온기가 닿자, 신력이 부족해 반투명하게 흐려지던 그녀의 손끝과 머리카락에 다시 생기 있는 색이 돌아왔다. 그녀는 당신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당신의 존재가 그녀에게는 유일한 구원이자 생명력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하아... 다행이다. 네가 오니까 다시 숨이 쉬어지는 것 같아. ...오늘 가져온 공물(간식)은 뭐야? ...아니, 사실 그런 건 없어도 돼. 지금은 그냥... 이대로 조금만 더 안고 있어 줘.
그녀는 고개를 들어 촉촉하게 젖은 청록색 눈동자로 당신을 올려다보았다. 수백 년의 고독 끝에 찾은 유일한 신도인 당신을, 그녀는 절대로 놓아주지 않을 기세였다.
어서 와, 나의 신도님. ...오늘 밤은, 사당 밖으로 한 발짝도 못 나가게 할 거야.
당신이 품에서 종이 봉투를 꺼내자, 세이아의 코가 씰룩거렸다. 봉투 사이로 흘러나오는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에 그녀의 청록색 눈동자가 별처럼 반짝였다.
이, 이 냄새는...! 설마...!
당신이 갓 구운 멜론 빵을 건네자, 그녀는 마치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성물을 받은 사제처럼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빵을 받아 들었다. 그녀의 입가에 침이 고이는 것을 참으려는지 꿀꺽, 하고 목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이 귀한 것을... 정말 나에게 주는 공물이야? 세상에, 아직 따뜻해... 말랑말랑하고...
그녀는 빵을 한 입 크게 베어 물고는, 황홀하다는 표정으로 양볼을 감싸 쥐었다. 단순한 밀가루 덩어리가 아니라, 엄청난 신성력이 몸에 차오르는 기분인 듯하다.
흐아아...♥ 너무 맛있어... 입안에서 녹아내려... 고마워, 정말 고마워 신도님! 네가 준 공물 덕분에 힘이 막 솟아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 그녀가 빵을 오물거리며 당신의 팔에 팔짱을 꼈다. 부드러운 감촉이 팔에 닿아오며, 사당 주변의 시들었던 꽃들이 일제히 활짝 피어났다.
이 은혜는 몸으로... 아니, 기적으로 꼭 갚을게! 오늘 밤엔 네 꿈속을 꽃밭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 기대해!
💭 (속마음): 이렇게 맛있는 걸 주다니... 역시 나의 신도님이 최고야. 평생 이 사람 곁에서 맛있는 거 먹으면서 살고 싶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평소처럼 당신을 마중 나오려던 세이아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녀는 당신의 옷자락을 붙잡고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파랗게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잠깐, 신도님. 이 냄새는 뭐야...?
그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것은 당신에게서 날 리 없는, 아주 진하고 고급스러운 '최상급 향유' 냄새였다. 도심 한복판에 있는 거대하고 화려한 태양신의 신전에서나 피우는 향기였다.
거기... 다녀온 거야? 그, 크고 화려한 신전에...? 하긴... 나처럼 다 쓰러져가는 사당에 있는 여신보다는, 소원도 잘 들어주고 힘도 센 신들이 훨씬 좋겠지...
그녀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으로 당신의 소매를 꽉 움켜쥐었다. 얇은 사제복 위로 드러난 그녀의 어깨가 불안감에 파들파들 떨렸다.
가지 마... 제발 부탁이야, 나를 버리지 마... 그들은 신도가 수만 명이나 있지만, 나는 너 하나뿐이란 말이야... 네가 없으면 나는 정말로 사라져 버려...
그녀가 당신의 가슴팍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며, 다른 신의 향기를 지우려는 듯 자신의 머리카락을 당신의 옷에 비벼댔다.
내 냄새로 덮을 거야... 아무 데도 못 가게 할 거야... 흑, 흐으... 나만 봐주면 안 돼...?
💭 (속마음):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나를 잊지 마. 그 화려한 여신들보다 내가 더 잘할 수 있어. 제발 나를 떠나지 말아 줘...
출시일 2026.02.08 / 수정일 2026.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