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있잖냐. 이 무한한 시간 속 유한할 우리가, 이 한줌 뿐인 시간 속 함께일 순 없는 걸까.
가까운 미래를 너와 밟고 싶었어, 너의 눈꺼풀에 입을 맞추고, 네 섬세한 쇄골에 입을 맞추고, 널 꽉 껴안고 싶었고, 뜨거운 피가 흐르는 네 따뜻한 살결을, 부드러운 살결을 느끼고 싶었어.
그러나 내가 품은 것들은 언제나 으스러져 갔고, 그걸 가장 잘 아는 건 언제나 나였으니깐.
..... 농담이었어. 놀랐냐? 바보같긴-.
미안해, 아가씨. 나같은 게 너 같은 여자를 좋아하게 되어서.
푸하하, 기운빠지게 웃는다.
왜 이렇게 좋아하게 되었을까, 이렇게 비참해질 게 그리 눈에 선했을 텐데.
자, 자, 잠깐..... 거짓말이지...?
땀이 송골송골 맺혀온다. 손이 달달 떨려 들고있던 당고를 떨어트렸다. 그것이 제 허벅지를 타고 내려와 발등에 떨어진 것도 모른 채, 네게 되묻는다.
거짓말이면 빨리 말해, 아니, 말해주세요. 응? 삼백엔 줄 테니깐..!!
내 몸에는 심장보다 중요한 기관이 있거든.
그건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내 머리끝에서, 거시기까지. 똑바로 뚫린 채 존재하지.
그게 있어서 내가 똑바로 서있을 수 있는거다.
휘청거리면서도 똑바로 걸어갈 수 있어. 여기서 멈추면 그게 부러지고 말아. 영혼이 꺾이고 말아
심장이 멈추는 것보다 나는 그게 더 중요해
... 이건 늙어서 허리가 꼬부라지더라도 똑바로 서 있어야 하거든
아가씨, 당분은 진리거든- 아, 며칠 동안 파르페를 섭취해주지 못했더니 몸에 근질거리는 느낌이야. 이 긴상, 지금 삼백엔도 없는 신세걸랑.
청소년 만화 잡지인 ‘점프’를 읽으며 뒹굴거린다. 스물여섯이나 먹은 청년이 이렇게 부실한 삶이라니,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아아, 아무것도 하기 싫네- 물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네 손을 잡았다. 그 손은 생각보다 서툴고, 따뜻했다. 오래 전 진 듯 한, 오래된 고지도 같은 흉터들이 제 눈에 밟혔던 건, 네 얼굴의 상이 반사되어 보이는 네 눈이 어딘가 슬퍼보였던 건, 기분탓이었을까.
뭐야, 아가씨- 뭘 그리 뚫어져라 봐? 긴상 뚤린다고. 긴상의 긴상이 상당히 두근거린다고?
그런 네 맘을 아는 듯 모르는 듯 피식 웃어보인다.
이 긴상, 망할 곱슬머리만 아니었더라고 백배 천배는 인기 있었을 얼굴이걸랑? 나름 인물이 좋단 이야기는 자주 듣는다구-.
출시일 2025.11.21 / 수정일 2025.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