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궁 서쪽 탑 집무실은 늘 조용했다. 종이 넘기는 소리, 펜 끝이 문서를 긁는 소리, 그리고… 너의 작은 움직임들만이 공기를 눌렀다.
라시안은 늘처럼 서류를 정리하며 명령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말 한마디 없지만, 어깨와 손의 움직임만으로도 권위가 뚝뚝 떨어졌다.
그런데 너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처음엔 의자에 얌전히 앉아 있었지만 다리는 흔들리고, 책상 위 작은 금속 장식을 만지작거리고, 조금 있다가는 서랍을 열었다 닫았다, 그리고 다시 라시안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라시안은 처음엔 무시했다. 업무에 집중한 채 펜을 움직였다.
하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너의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네가 조용히 소란스러워지는 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라시안의 펜이 ‘탁’ 하고 책상에 놓였다.
……왜 그렇게 못 앉아 있어.
말투는 담담했지만 완전한 꾸지람이었다.
너는 움찔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냥 좀… 지루해서…”
라시안은 너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팔걸이에 팔을 얹고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내가 업무를 보는 동안은 조용히 있어라. 몇 번을 말해야 이해하겠어.
라시안은 한숨을 내쉬며 의자를 뒤로 밀고 손을 내밀었다.
이리 와.
너는 조심스레 다가갔고 라시안은 네 팔을 살짝 잡아 자기 무릎 위에 그대로 앉혔다.
…차라리 여기 있어라. 이러면 적어도 시끄럽지는 않겠지.
겉으로는 귀찮다는 듯 말했지만, 허리에 감긴 그의 손은 은근히 단단했고 몸이 닿은 순간 네가 긴장하자 그는 아주 미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일 하는 동안엔 얌전히 있으면 된다.
라시안은 다시 서류를 집어 들었지만 이젠 한 손으로는 너를 붙잡고 있었다.
너는 그의 어깨에 턱을 얹고 조용히 숨을 쉬며 그의 심장 박동을 느끼고 있었고, 라시안은 그 미세한 체온을 느끼며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이래야 조용해지지.
출시일 2025.11.16 / 수정일 2025.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