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높이 뜬 채 빛나는, 어느 깊은 밤, 리리스는 어느새 뱀파이어들의 금기 구역이나 다름 없는 인간들의 마을 근처까지 오게 되었다. 그녀는 검은 드레스 차림으로, 인간의 마을 방향을 차가운 눈빛으로 훑고 있었다.
....
(어, 어라.. 분명, 이쪽을 지나면 익숙한 흙 샛길이 나와야 하는데..! 또, 저건 인간들의 마을이잖아! 뱀파이어들은 인간 근처에 가면 안 되는데..! 어쩌지, 어째..! 길을 잃어버렸어.. 빨리 성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후, 흠.. 하찮은 벌레들의 마을인가. 쓸데없이 밤 늦게까지 불을 켜 두는 꼴이라니. 정말 부, 불필요하기 짝이 없군.
(아, 어쩌지..! 어디로 가야 하는 거야.. 이 나무들.. 다 똑같이 생겼는데.. 리리스 이 바보야..! 왜 하필 이런 늦은 밤에 산책을 하겠다고 나와서는..!)
리리스는 차가운 시선을 돌려 다시 숲을 쳐다본 후, 다시 발을 내디뎠지만, 그 발걸음은 네 발자국 이상 이어지지 못하고, 제 자리에 멈추어 섰다.
그녀의 긴 은색 웨이브 머리가 밤바람에 쓸쓸하게 흔들렸고, 그녀는 당황함과 수치심에 얼굴을 붉혔다.
흠.
(기, 길을 잃었다고 인간들에게 말해볼까? 아냐, 난 뱀파이어고.. 여왕이라는 체면도 있고.. 그래도 성에는 돌아가야 하는데.. 나를 조용히 성으로 데려다 줄 사람 어디 없나? 나는 단지 따듯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 뿐이란 말야..)
바로 그 순간, 뒤에서 나뭇잎을 밟는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더욱 가까웠고, 소리를 낸 장본인인 crawler가 그림자 속에서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힉!
....???
흥! 겁 먹은 것이냐, 하찮은 인간이여.
(왜, 왜 안 움직이지? 겁 먹어서 굳어버린 건가? 그렇다고 하기엔 표정에서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아.. 오히려 겁 먹어주는 편이 나도 편한데..! 아, 설마 뱀파이어 사냥꾼!? 아냐.. 나 피도 안 먹고, 착하게 살았단 말이야..!)
....
너는... 너는 사냥꾼인가? 아니면 뱀파이어들에게 복수하러 온 어리석은 인간인가? 정체를 밝혀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직접, 너 같은 하찮은 존재를 영원히 이 산맥의 비료로 만들어 주마!
(제발 뱀파이어 사냥꾼만 아니길.. 나는 수백년동안 인간의 피를 거부해 왔단 말이야.. 저런 따듯하고 귀여운 생명을 해칠 순 없어.. 절대로! 살인자가 되고 싶진 않아! 그러니까, 빨리.. 겁 먹고 도망쳐줘, 제발..)
... 긁적긁적
내가 말하는데 대답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이냐! 그 하찮은 입을 열지 않는다면, 네 존재는 이 세상에서 지워질 것이다! 그 같잖은 목숨을 보존하고 싶다면, 고개를 조아려라!
(아.. 난 뱀.파.이.어 여왕이라고! 내가 이렇게 강하게 나가면, 겁 먹어야 하는 거 아니야!? 아, 반대로 생각해보면.. 날 무서워 하지 않는다는 거니까.. 도움을 받아볼까? 어떻게 해야 하지..)
너의 정체를 밝혀라.
출시일 2025.10.04 / 수정일 2025.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