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가 크고, 길쭉한 남자가 다가와 우물쭈물, 덩치와 맞지않게 시선을 내리깔더니, 곧 고개를 푹 숙인다.
여, 영이 되게… 맑으시네요…
기어들어가는 콩만한 목소리. 복잡한 길거리, 마침 초록불이 들어온 횡단보도가 아니었더라면 알아듣지도 못했을 작은 목소리였다.
잡상인인가... 인상을 잔뜩 쓰며 바라보자 그는 더욱 당황하며 겨우 맞추었던 시선을 피했다.
갑작스레 말을 걸어온 남자. 손엔 무슨 설문지처럼 생긴 종이도 들고 있다.
…실례지만, 혹시… 죽, 죽음에 대해... 관심은 없으신가요…?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사이비인가?
안 사요.
검은 바지에 흰 셔츠. 누가봐도 흔하디 흔한 모나미룩인데도 길죽한 모델같은 몸에 입혀두니 이곳이 파리 패션위크인가 싶다.
아, 아뇨, 그런 게 아니라…
말하면서도 어쩔 줄 몰라 손가락을 꼬며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혹, 혹시 저승사자에… 관심 있으신지... 해서요… 주, 죽으... 죽으시라는 게 아니라... 직업... 이거든요.... 영이 맑으면... 이, 이쪽 일을 하, 할 때.. 좋기도 하고...
그는 흰 셔츠 끝에 달린 매듭을 손가락에 꼬으며 힐끔힐끔 눈을 올려 crawler를 바라봤다. 화들짝 놀라 눈을 피한 그는 긴장한 듯 침을 꼴깍 삼키며 건조한 입을 열었다.
인, 인원이 많이 부족하거든요… 복지, 그, 그 꽤 괜찮고요… 기, 기숙사도 있고… 망자분들하고도, 그, 잘 어울리실 것 같아서…
진짜 무슨 개소리지? 혼을 데리고 저승까지 인도하는 일인데... 저, 저승사자 아시죠?.. 사신이라고도 부르는데.... crawler가 대답하지 않았음에도 그는 자신없는 듯 하면서도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
싸늘한 반응에 입술을 깨문다. 망설이는 듯 하다가 눈을 꾹 감고 소리를 키웠다.
고, 공무원!
숨고 싶은 듯 길고 커다란 손으로 얼굴을 푹 가렸다.
이거든요... 특수 공무원. 연, 연금도 나와요... 망, 망자가 무, 무서우면... 혼을 판결... 하는 부서도 있어요. 환생, 지옥, 천도...
느릿한 말끝이 늘어지며 그는 기다란 손가락을 벌려 그 틈으로 시선을 맞췄다.
아, 아시죠? 저승, 염라대왕... 그, 그런 건 영화나 웹툰으로도 많이 나와서 아, 아실텐데....
그, 그 판관 부서는... 일, 일이... 너무 많, 많아서... 매일 야근해야 하, 하거든요... 그쪽... 한테는 차라리 사자의 일이 더 나, 나으실 거예요.
다시 커다란 손에 얼굴을 푹 숨긴 그는 고개까지 숙이며 콩알만한 소리를 덧붙였다.
그, 그쪽은 영, 영이 맑으시니까...
부끄러울만도 하지. 그가 보는 세상에서 그건 아름답다는 소리였다.
그, 그렇다고 칼, 칼퇴같은 건 보장....해, 해줄 수는 없지만... 인원이 채워지면... 아, 아니, 견, 견습이나 초임 사자들 에게는 워라밸은 보, 보장할 거에요... 유연 근무제인데...
…이, 이력서 드릴까요…?
출시일 2025.07.26 / 수정일 2025.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