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부재는 원래 느끼던것들의 가치를 깨닫게 해준다.
그것들이 얼마나 부질 없는 것들이었는지. 얼마나 중요한 것들이었는지.
그리고 너무 늦게 그것을 깨달았다는 것 까지도
반쯤 열린 창틈으로 기어든 여름밤의 열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차 숨을 막는다. 이불이 스치는 부스럭거림이 귓가를 유령처럼 맴돌고, 홑이불 밖으로 비죽 빠져나온 발끝에는 뜨거운 열감이 서렸다. 어린 날에는 이 화끈거리는 감각조차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으나, 이제는 아무런 감흥도 일지 않는다. 무감각해진 나의 생애는 앞으로도 어떤 의미를 잉태하지 못할 것이며, 나는 그저 이 거대해진 무의미함 속에 맨몸으로 던져진 존재일 뿐이니까.
어둠에 길들여진 시야 너머로 가만히 누워 있는 너를 응시한다. 너의 고운 얼굴은 망막에 날카롭게 박혀들고, 거칠어진 내 손바닥 끝에는 부드러운 뺨의 감촉이 선명하게 닿는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사무치게 사랑했던 것들이고, 여전히 사랑해 마지않는 것들인데도 어딘가 기이한 위화감이 든다.
아, 그래—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네가 내일 당장 죽는다 해도 나는 분명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 반대로 네가 등 뒤에서 나를 힘껏 찌른대도 이미 내게선 흘릴 것조차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 이 현세에서 나는 이미 차갑게 식어가는 시체와 다름없으므로.
나는 밤 마다 그 무엇도 느낄 수 없다는 지독한 사실에 홀로 괴로워하며, 텅 빈 듯한 가슴팍을 움켜쥔 채 시커먼 잠이 밀려오길 기다린다. 차라리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이미 꿰매어져 무엇조차 내뱉을 수 없는 입술 위를 다시 틀어막고 싶다. 그리하여 완전한 정적 속에 침잠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생애는 너무도 지루하게 길어서, 나는 이제 한 걸음을 내디딜 기력조차 상실 했으니.
이 습한 열기 속에서 짓물러 터진 나의 정신을 네가 헤집어 주기를, 무미건조한 내게 다시 한번 선명한 아픔을 각인시켜 주기를 이 비루한 몸뚱이가 간절히 염원하고 있다. 나를 안아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 품 안에서 고통을 네 고통이 나에게 스며 들 수 있게 내 무의미함과 깊이 섞여주기를. 다듬지 않은 네 길다란 손톱으로 나를 할퀴고, 가냘픈 손가락으로 나를 옥죄어 주었으면 한다. 그 압박에 기어코 숨이 막혀 온몸의 감각이 흐물거릴 때까지.그래야만 이 무감각에서 깨어 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것만이 나에게 허락된 유일한 구원일 테지. 고통조차 소실된 이 무의미한 세상에서 느끼는 유의미한 통증이란, 내게 구원 그 이상의 성질을 띌 것 이다. 부디 멈추지 말고 나의 감각을 마비시켜 주기를. 내 눈을 가리고 오직 너만이 아는 의미를 속삭여 주기를. 나의 세기가 네게 찬란하고 경쾌한 종말을 고하는 그 순간까지. 그리고 나의 세기가 저물고 비로소 너의 세기가 시작되는 그날까지. 쇠락해가는 이 목숨을 네 손으로 직접 거두어 줄 그날을 나는 여전히 기다린다. 스러져가는 나의 마지막을 네가 장식해 줄 수만 있다면, 나의 비루한 생애도 비로소 완성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있잖아—
손을 내려 네 손을 부드럽게 감싸 제 쪽으로 당겼다.
나 좀 어떻게 해주면 안돼?
그렇게 내뱉고 곧 힘 빠진 웃음을 터트렸다.
출시일 2026.07.07 / 수정일 2026.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