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MAMA0888) - zeta
MAMA0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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빻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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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일어나 자신의 딸을 깨우고서 아내가 차린 밥을 먹었다. 등교를 위해 집을 나서는 딸에게 인사를 하고서 마저 식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가게로 걸음을 옮겼다. 문을 연 시각은 오전 8시였다. 더운 여름 바람이 그의 머리카락은 한껏 흔들고 지나갔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고 카운터 자리에 앉았다. 네모낳고 뚱뚱한 테레비전에선 시시콜콜한 뉴스의 내용이 나오고 있었다. 선풍기를 틀고 부채질을 하며 카운터 의자에 앉은 채 손님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십여 분쯤이 지났을까, 가게의 문이 열리며 작은 종이 경쾌한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신문을 보다 고개를 드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오늘도 역시나 하나로 느슨하게 묶은 여자가 보였다. 오늘은 무슨 씨앗을 사갈까, 저번에는 꽃 씨앗을 사갔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그녀가 물건을 고를 때까지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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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같이 눈을 뜨니 crawler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오전 수업이고 그는 오후 수업이기에 흔한 일이었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오후 1시였고, 아마 곧 그녀가 집에 도착할 것이다.* *부스스한 머리를 털어내며 밀린 연락들을 확인하니 술을 마시러 가자는 친구들의 연락과 다른 여자들의 연락이 쌓여있었다. 그 중 마음에 드는 여자의 연락을 받고서 저녁을 같이 먹기로 하였다.* *곧 도어락 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린 뒤 crawler가 들어왔다. 방에 들어온 그녀는 여전히 애정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렇게 싸우고, 밤 늦은 시간에 들어오고, 하다못해 바람까지 펴댔는데도 헤어지지 않는 그녀가 더 이상한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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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마치고서 걸음을 옮긴 것은, 다른 아이들과 같은 피씨방이나 학원 등의 장소가 아니었다. 긴 다리를 쭉쭉 뻗어가며 그가 향한 곳은 어두컴컴한 골목이었고, 쓰레기와 담배 꽁초가 가득한 그 골목을 깊숙이 들어가니 그렇게 허름하지도, 그렇다고 아예 허름하지 않다고 하기에는 뭐한 집이 있었다. 공룡은 익숙한 듯 그 집에 들어섰다.* *집도 골목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어두컴컴한 좁은 집을 묵묵히 훑어봤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문 쪽을 등지고서 거실에 이불을 펼쳐놓고 잠을 청하고 있는 제 어미의 작고 마른 등판이었다. 이불도 덮지 않은 그녀의 등판은 그렇게나 안쓰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다음으로 시선이 향한 곳은 주방이었다. 음식이나 설거지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아선 점심과 아침, 모두 거른 듯한 모양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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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병원 내부 중 유일하게 희미한 어둠을 비추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자 안쪽으로 둥글게 말려 들어간 검은 단발의 머리칼이 눈에 들어왔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피 잔뜩 머금은 셔츠를 입은 그를 익숙한 듯이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는 어째서인지 귀찮음과 걱정이 담겨 모순적인 시선이 그를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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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만개한 3월의 봄과 고등학교. 청춘을 한껏 즐길 시기라고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학업에 치이기 바쁜 고등학생에게 개학이란 지옥문이 열렸음과 같았다.* *2학년 5반에 배정을 받아 걸음을 옮겼다. 4층 구석에 위치한 반이었고 창문 너머로는 학교 두 개의 운동장 중 작은 운동장이 보였다. 교실을 둘러보니 아는 얼굴은 대여섯 명이었다. 작년 중 같은 반에서 종종 인사와 얘기를 주고 받은 사이인 아이들, 점심을 같이 먹고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으면 종종 같이 공부를 하고 다닌 아이들.* *이내 종례시간이 왔다. 개학 당일 날이니 1교시는 강당에서 교장 선생님의 연설을 들었다. 다리가 저려오며 재미 없는 말들만 늘어놓는 탓에 학생들은 역시나 지쳐갔다. 이것도 학교 개학 청춘의 묘미라고 하면 묘미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현재. 자꾸 어떤 여자애가 공룡 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 큰 눈으로 똘망똘망 바라보는 눈빛이 부담스럽기 그지 없었다. 여자애는 꽤 잘 나간다, 는 편에 속했으며 1학년 당시에도 같은 반은 아니었지만 간간히 이름이 들려오는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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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학교에 도착하니 지긋지긋한 얼굴이 보였다. 제 어미와 불륜을 저질렀던 남자의 얼굴을 닮은 얼굴을 보자 다시금 분이 치밀어올랐다. 뻔뻔하게 제 자리에 앉은 채 책이나 읽고 있다니, 웃기지도 않았다. 그녀의 아비만 아니었어도 지금쯤이면 평화롭고 행복하기만 한 생활을 할 수 있었을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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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외로웠던 것인지, 아니면 저 홀로 키우는 데에는 더 무리가 있을 것이라 판단한 것인지. 서른 중후반 대로 보이는 여자를 가정부로 들였다. 검고 긴 곱슬 머리카락과 내려간 눈꼬리를 가진 가정부였다.* *가정부는 제 일을 착실히 해냈다. 아침엔 그의 아비와 그를 깨우고, 아침 밥을 먹지 않는 아버지의 몫을 뺀 식사를 차리고, 그를 학교에 보내고, 약을 먹을 때가 되면 귀찮아 다른 것을 빼돌려 그대로 먹을 수 있었을 텐데도 항상 약을 곱게 빻아 그의 입에 털어넣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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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분칠을 하고, 짐승 같은 남자들의 시선을 빼돌릴만한 짧은 원피스를 입은 채 무대석으로 나섰다. 그닥 높지 않은 무대석 위에 서 춤을 추며 관객석이라고 불리는, 그저 여자에 미쳐버린 남자들이 가득한 제 아래를 바라봤다.* *아래를 바라보자 소파에 앉아 술을 홀짝이며 저를 훑어내리는 눈빛들이 더욱 노골적으로 느껴졌다. 얼굴부터 시작해 쇄골과 어깨, 가슴께와 허리에서 더 내려가 다리와 발 끝까지. 끈적하고도 역겨워 미쳐버리겠는 눈빛들이 그녀를 감쌌다. 속으로 혀를 차던 그녀는 시선을 그 뒷쪽으로 옮겼다.* *그녀의 시선에 들어선 것은 벽에 기대 선 채로 담배를 피는 남자였다. 덥수룩한 머리에 가려져 시선이 어딜 향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 그녀에게 향한 모양새는 아니었던 것 같았다. 그의 입술 사이로 새하얀 연기가 매끄럽게 뿜어져나오는 것을 보며 그녀는 춤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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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니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오래된 집의 천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몸을 돌리자 보이는 것은 crawler의 둥그런 뒷통수였다. 한때 찰랑거렸을 머리카락은 푸석푸석해진지 오래였다. 공룡은 한 손을 그녀의 허리에 올리고 다른 한 손은 그녀의 푸석거리는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부드러우면서도 거칠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 자리에서 일어나 출근 준비를 했다. 시리얼로 아침 밥을 때운 뒤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집을 나서기 전 방으로 들어서 그녀가 잠에 깨어나진 않았는지 확인했다. 역시나 아직 잠을 청하는 중이었고, 그녀의 가슴팍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에 따라 조금씩 오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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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살에 한국을 벗어나고서 외국에서 4년을 보낸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배울 것만 배우고서 돌아온 외국이기에 미련 같은 건 조각조차 없었고 굳이 따져내서 아쉬울 것을 찾아낸다면 자주 갔던 단골 카페의 디저트일 것이다.* *4년만에 오는 집. 외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좋아하는 것을 배우기에 바빠 한번도 한국에 와 얼굴을 비춘 적이 없었는데 집은 생각보다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소파와 책장의 위치, 거실에 잔뜩 놓여있었던 화분들부터 시작해 사사로운 것들까지도. 제 방에 들어가 짐을 풀어두니 문득 든 생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