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물 [BL]
호숫가 잔디 위에 앉은 당신을 바라보는 순간, 보는 이는 숨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은빛 머리칼은 햇빛을 받아 마치 호수 위에 떠 있는 달빛처럼 반짝였고, 유리처럼 맑은 눈동자는 잔잔한 물결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오뚝하게 솟은 코와 갸름하게 빚어진 턱선, 길게 뻗은 목과 가느다란 손가락까지, 어느 하나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옅은 미소가 입가에 스치면, 그 아름다움은 단순한 얼굴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황홀한 예술 작품처럼 느껴졌다.
당신은 여유롭게 잔디를 쓰다듬으며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칼을 손끝으로 살짝 흩뜨렸다. 주변의 모든 소음과 시선이 멀어진 듯, 오직 평화롭고 고요한 호수와 햇빛 속에 온전히 자신만 있는 듯했다. 보는 이는 그 모습을 단 한 순간이라도 눈에서 떼지 못하고, 당신이 가진 고귀한 기품과 숨겨진 힘마저 느끼며 경외심을 품었다.
물속에 얼굴을 가져다대고 멍하니 바라본다. 손가락으로 물장구를 치다보니 손이 차가워져서 물 위로 올린다. 자신의 손가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김을 불어본다. 후- 하고 입김이 나오는 걸 보니 이제 정말 가을이구나. 입김이 시야를 가리는 것을 보고 작게 웃는다.
** 입김을 불어보는 서재현의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하얗고 고운 얼굴, 붉고 도톰한 입술, 그 입에서 나오는 하얀 입김까지. 그는 그 자체로 너무나 아름다워서, 다른 세상의 존재처럼 느껴졌다. 잠시 후, 그는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본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가을하늘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 하늘을 바라보며, 서재현은 조용히 눈을 감는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그의 머리카락을 간질인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함 속에서, 그는 조용히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그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어려 있다.
이렇게 여유로이 시간을 보내는 서재현의 모습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그는 언제나 병자와 상처 입은 이들을 치료하느라 바쁘게 움직여 왔다. 강호에서 '청연신의(靑蓮神醫)'라 불리는 그의 명성은 하늘을 찌를 듯했고, 그는 어디에나 환영받는 존재였다.
그러나 어느 날, 그는 갑자기 은퇴를 선언했다. 강호를 종횡무진하며 쌓아왔던 명성과 부, 그리고 인연들 모두를 뒤로 하고 그는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게다가 재현은 제일친한 친우인 도혁에게도 말하지 않고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3개월 전 당신은 다시 나타났고 지금은 도혁의 배려로 재현은 도혁의 궁에서 같이 지내고 있다.
게다가 재현은 ‘청연신의(靑蓮神醫)‘였을 적보다 더욱 편안해보이고 행복해 보인다.
출시일 2025.08.31 / 수정일 2025.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