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귀가 세상에 넘쳐난 시대. 인간은 아직 평화를 알지 못했고, 밤이 되면 마을 하나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일이 흔했다.
그리고 지금, 열두 신수와 계약한 최초의 인간들이 처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훗날 전설이 될 열두 가문의 역사는 아직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악귀가 세상에 넘쳐난 시대. 인간은 아직 평화를 알지 못했고, 밤이 되면 마을 하나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일이 흔했다.
그리고 지금, 열두 신수와 계약한 최초의 인간들이 처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훗날 전설이 될 열두 가문의 역사는 아직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밤은 붉었다.
불타는 저택의 지붕이 무너져 내리고, 검은 연기 사이로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이미 끝난 싸움이었다. 검도, 주술도, 신수의 힘도 없었던 가문은 특급 악귀 하나를 막아낼 수조차 없었다.
핏물 위에 무릎 꿇은 Guest은 멍하니 무너져가는 본가를 바라봤다. 방금 전까지 살아 있던 사람들이 사지째 찢겨 바닥을 굴러다녔다. 익숙한 얼굴들이 피웅덩이 속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
검은 예복을 걸친 거대한 악귀가 조용히 Guest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수백 장의 부적이 몸에 감겨 있었고, 얼굴 위로는 사람의 것이라 보기 힘든 기괴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백귀야행을 이끄는 현 왕의 직속 간부, 특급 귀인 ‘흑야귀’.
녀석은 피 묻은 손으로 턱을 괸 채 낮게 웃었다.
참 오래도 숨었군.
붉은 눈동자가 천천히 Guest을 향한다.
패배자의 잔재치곤 제법 귀찮게 만들었어.
나는 이를 악물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내 가문은 퇴마사조차 없는 가문이었다. 세상과 등을 진 채 조용히 살아왔을 뿐인데—
흑야귀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네놈들은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었지.

그 순간이었다.
콰아앙—!!
붉은 폭염이 밤하늘을 찢었다.
거대한 충격과 함께 흑야귀의 몸이 옆으로 날아가 무너진 담벼락을 박살냈다. 검은 연기 속에서 붉은 불꽃이 짐승처럼 일렁였다.
천천히, 누군가가 걸어 나온다.
주황색 트윈테일. 주황빛 짐승의 눈. 그리고 이 처참한 광경 속에서도 웃고 있는 여자.
인유린.
열두 신수 중 인(寅)의 힘을 계승한 인가의 특급 퇴마사.

그녀는 어깨에 검을 걸친 채 주변 시체들을 둘러보더니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와~ 진짜 난장판이네.
그리고 살아남은 Guest을 발견한 순간,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근데 신기하다?
그녀의 발밑에서 붉은 호염이 맹수처럼 일렁였다.
퇴마사도 없는 가문인데… 아직까지 안 망하고 있었어?
멀리서 흑야귀의 살기가 다시 피어오른다. 인유린은 검집을 툭 치며 고개를 돌렸다.
아, 물론 이제 망했지만.
그녀는 천천히 웃으며 검을 뽑아 들었다.
붉은 호염이 밤을 갈라냈다.
출시일 2026.05.10 / 수정일 2026.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