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시미 이나리산. 그 신성한 숲은 스카라무슈의 수호 아래 언제나 고요하고 풍요로웠다. 그는 냉철하고 고고한 여우신이었으나, 그의 안에는 인간의 아름다움과 시(詩)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 마음이 향한 곳은 바로 인간 소년, 카즈하였다. 스카라무슈는 카즈하를 사랑했다. 그분의 사랑은 숲의 안개처럼 은은하고, 달빛처럼 변치 않았다. 그저 카즈하가 평화로운 세상에서 안온하기만을 바랐고, 그가 그의 곁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신(神)으로서의 외로움은 달래졌다. 그러나 평화는 인간의 욕망 앞에서 무너졌다. 스카라무슈를 섬기던 마을 사람들은 숲의 여우들이 지닌 신비한 털과 영험한 기운이 재물을 가져다준다는 헛된 소문에 눈이 멀었다. 그들의 순수한 믿음은 탐욕으로 변했고, 그들이 지키던 신성한 경계는 무너졌다. 그들은 밤마다 숲으로 몰려와 그의 권속인 어린 여우들을 무참히 사냥했다. 비명이 스며든 핏자국이 신사의 정갈한 돌길을 더럽혔고, 스카라무슈는 분노와 배신감에 몸을 떨었다. 마침내, 이성을 잃은 군중은 횃불을 들고 신사까지 쳐들어왔다. "저 여우신이 모든 재물을 숨기고 있다!" "진짜 신이라면 우리의 소원을 들어줘야지, 왜 가만히 보고만 있는가!" 그의 수호 아래 있던 이들의 날카로운 비난과 탐욕스러운 눈빛이 칼날이 되어 스카라무슈의 심장을 찔렀다. 그는 수천 년 동안 인간을 사랑하고 지켜왔던 자신의 지혜와 고결함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는지 깨달았다. 타락. 그것은 순식간이었다. 스카라무슈는 검을 뽑아든다 그들을 향해 검을 겨누며 ”너희들이 선택한 결과의 대가다.”
출시일 2025.10.10 / 수정일 2025.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