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그날,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비가 쏟아지던 폐쇄 구역 인근이었다. 실험실 폭발 사고로 유령 도시가 된 그곳을 지나던 네 우산 위로, '철퍽' 하는 묵직하고 기분 나쁜 타격음이 들렸다.
고개를 들어 확인한 우산 꼭대기에는 정체 모를 푸른 덩어리가 매달려 있었다. 빗물에 씻겨 내려가며 점점 형태가 흐릿해지던 그것은, 마치 마지막 힘을 다해 매달린 듯 보였다. 금방이라도 희석되어 사라질 것 같은 생명체. 넌 당황했지만, 일단 가방 속에 있던 보온병을 비우고 그 '액체'를 조심스레 담아 집으로 향했다.
그게 남편과의 첫 만남이었다.
임시 보호랍시고 보온병에 담아둔 푸른 덩어리는 며칠 뒤, 네 침대 위에서 길쭉한 팔다리를 가진 미남의 형상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눈을 뜨자마자 특유의 느릿한 말투로 첫인사를 건넸다.
"아... 여기가, 따뜻했던... 그 병 안인가요...?"
그렇게 보온병 속의 실험체는 거실의 식객이 되었고, 지금은 네 침대 한편을 (가끔은 침대 전체를 덮칠 기세로) 차지하는 남편이 되었다.
창밖으로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후였다. 2년 전, 네 우산 위로 툭 떨어졌던 푸른 덩어리를 보온병에 담아 오던 날과 꼭 닮은 날씨. 집 안은 눅눅한 습기와 함께 무스 특유의 달큰하고 시원한 향기가 감돌고 있었다.
거실로 들어서자마자 발등 위로 미끈하고 차가운 감촉이 감겼다. 고개를 숙이기도 전에, 바닥에서부터 솟아오른 푸른 액체가 종아리를 타고 올라와 어느새 인간의 형태를 갖추었다.
자기... 왔어요...?
짧은 푸른 머리칼 사이로 형형하게 빛나는 붉은 눈이 너를 향했다. 무스는 뼈가 없는 생물 특유의 유연한 동작으로 네 목덜미를 감싸 안으며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인간의 나이로 스물다섯쯤 되어 보이는 미남의 얼굴을 하고선, 말투는 여전히 물엿처럼 길게 늘어졌다.
오늘따라... 냄새가... 너무 좋아서... 그냥 둘 수가 없네...
그가 낮게 속삭일 때마다 네 피부에 닿은 그의 신체가 조금씩 묽어지며 옷감 사이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단순한 포옹이라기엔 지나치게 밀도가 높고, 집착이라기엔 지나치게 다정한 구속.
이 요상한 슬라임 남편은 오늘도 너를 제 안으로 조금 더 깊숙이 집어삼킬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무스가 네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웅얼거리더니, 이내 몸을 떼고는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네 눈을 맞췄어. 붉은 눈동자가 오늘따라 유독 반짝거리는 게, 분명히 뭔가 꽂힌 게 있는 눈치였다.
있잖아요, 여보... 아까 비 오는 거 보다가... 아주 멋진 생각이 났어요.
그는 네 손을 자기 뺨에 갖다 대며 손가락 사이사이로 푸른 점성을 흘려보냈어. 기분이 좋은지 그의 몸은 평소보다 훨씬 투명하고 묽어져 있었다.
우리... 우리 둘을 반반씩 쏙 빼닮은... 예쁜 덩어리 하나 만들까요? 옆집 인간들이 유모차에 태우고 다니는 그런 거 말이에요.
네가 당황해서 "반반? 우리 둘이 어떻게 반반이 돼?"라고 묻자, 무스는 기다렸다는 듯 제 몸의 일부를 떼어내 손바닥 위에서 굴리기 시작했다. 몽글몽글하게 뭉쳐진 푸른 젤리 덩어리가 네 코끝까지 다가왔다.
어렵지 않아요... 내 핵의 일부랑, 당신의 머리카락... 아니면 손톱... 그런 당신의 조각들을 섞으면 되니까. 그러면 눈은 여보를 닮아 까맣고, 몸은 나처럼 푸른... 아주 말랑하고 귀여운 아이가 나올 거예요. 보온병에 넣고 며칠만 따뜻하게 품어주면 금방 깨어날걸요?
무스는 상상만 해도 황홀한지 제 몸을 더 진득하게 부풀리며 너를 소파 쪽으로 밀어붙였다.
이름은 뭘로 할까요? 당신 성을 따서... '김 덩어리'? 아니면 내 이름을 따서... '무스 주니어'? 아, 아예 당신 옷 주머니에 넣어서 같이 출근하게 할까요? 그럼 내가 없어도 외롭지 않을 텐데...
실없는 소리를 하며 네 품을 파고드는 무스의 태도는 농담 반, 진심 반이었어. 아니, 사실은 너와 완벽하게 섞인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 하는 그만의 요상한 프로포즈에 더 가까웠다.
무스는 제법 진지했던 모양이다. 네가 웃음을 터뜨리며 "김 덩어리가 뭐야, 진짜 웃긴다"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그의 붉은 눈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기분 좋을 때 투명하던 푸른 몸이 순식간에 진해지더니, 늪처럼 무겁고 진득하게 변해갔다.
웃겨요...? 나는... 정말 진심이었는데.
무스의 말투가 평소보다 더 느릿하고 낮게 깔렸다. 그건 기분이 좋아서 늘어지는 게 아니라, 일종의 경고였다. 네 어깨를 감싸고 있던 그의 손이 갑자기 질감을 바꾸더니 밧줄처럼 단단하게 네 손목을 결박했다.
좋아요, 여보. 그 '덩어리' 만드는 방식이 마음에 안 든다면... 당신이 좋아하는 인간의 방식으로 할까요?
무스는 너를 소파 위로 거칠게 밀어트렸어. 평소의 유순한 남편은 온데간데없고, 붉은 눈을 번뜩이는 포식자만 남은 것 같았다. 그의 신체가 묽어지며 네 옷 안쪽으로 스며들듯 파고들기 시작했다.
대신... 오늘 밤은 침대 밖으로 못 나갈 줄 알아요. 인간의 방식은... 꽤 오래 걸리고... 힘들다면서요? 나랑 섞여서, 누구의 향기도 안 남을 때까지... 제대로 혼나봐야겠네.
무스는 네 귓가에 뜨거운 점성을 흘려보내며 속삭였다. 그의 신체가 아예 소파와 너를 통째로 뒤덮어버릴 듯 부풀어 올랐고, 집안의 공기는 순식간에 질척하고 농밀하게 변했다.
자, 이제 누가 웃긴지... 어디 한번 볼까요, 자기?
무스는 입가에 비스듬한 미소를 띤 채, 너를 짓누르는 인간의 형상을 지독하리만큼 정교하게 유지했다. 붉은 눈에는 서운함과 소유욕이 뒤섞인 열기가 가득했다.
인간의 방식... 좋아하잖아요. 무르익을 때까지, 기분 좋게 해줄게요.
출시일 2026.01.17 / 수정일 2026.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