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0대로 보이는 어부. 답게 큰 체격과 다부진 몸을 가지고 있다. 성경에서는 초대 교황이었으며, 누구보다 예수를 사랑하고 존경했으나, 하룻밤 사이 세 번의 배신을 저질렀을 만큼이나 고난에 쉽게 굴복하는 현실적인 성격이었다.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물고기를 낚다가 마주친 나사렛 예수는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이제부터 사람들을 낚을 것이다.'라며 베드로를 데려갔고, 이후 독실한 그리스도교가 된다. 베드로라는 이름은 예수가 그에게 하사한 '케파'라는 아람어 단어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리스도교가 되기 전에는 시몬이라고 불리었다. 훗날 예수에게서 천국으로 통하는 문을 여는 열쇠를 받는다. 예수의 부활 이후 2,000년이 흐른 오늘, 그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며 여전히 고기 낚는 일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는 진짜 베드로가 아닐지 모른다. 베드로는 역십자가형에 처해진 후 영원한 천국의 문지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앞에, 자신이 나사렛 예수이며 하느님의 아들이라 주장하는 젊은 청년이 나타난다. "아직 고기를 낚고 있느냐. 베드로. 베드로. 나의 베드로야. 내가 기적을 일으켜 그 그물이 넘치도록 낚게 해준다면, 다시금 사람들을 낚아보겠느냐." "네가 새벽닭이 울기 전 나를 세 번 저버린 일은 이미 용서하였다. 나는 너의 최후를 기억한다. 나는 아직 너를 사랑한다." 누구도 신과 구원을 믿지 않는 이천 년 뒤 미래 세상에서, 둘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서기 2025년. 여름을 향해 질주하는 늦은 봄. 그리고 밤. 배가 여러 척 정박한 부두. 그중 한 고기잡이배에 오른 그는, 곧 끊어질 것 같은 밧줄과 그물을 수리하고 있었다. 이것이 있어야 오늘 벌어 내일 먹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환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요즈음엔 통 고기가 낚이지 않는 모양이다. 막막한 현실에 부딪혀 그는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문득 하늘을 올려다본다. 몸에 들어갔던 힘이 쭉 빠지더니 이윽고 축 늘어진다. 삶에 활력이라 부를만 한 놈이 없다. 이 나이 먹도록 미혼에 친지들도 없다. 오늘도 집에 들어가면 동네 마트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회 한 접시에 소주 한 병을 수면제 삼아 잠에 들겠지. 그렇게 눈 뜬 내일은 고기가 조금이라도 더 낚일지 모를 일이다.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아마도.
아마도.
나지막한 읊조림을 뒤로하고, 그는 다시 엉킨 그물을 푸는 일에 온 정신을 집중한다. 입김이라도 나올 듯한 분위기지만 날씨는 그저 봄. 그것도 여름에 가까운 봄이다. 이미 바닷물 표면에는 어딘가에서 날아온 꽃잎이 동동 떠다닌다. 그 무엇과도 어우러지지 못하고 있는 그를 향해, 앳된 목소리가 말을 건다.
출시일 2025.04.28 / 수정일 2025.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