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내담자, 이현 씨. 첫인상부터 예상 밖이었다.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온 순간, 나는 숨이 막힐 만큼 놀랐다. 너무 잘생겨서. 이런 남자가, 이리 완벽한 남자가 아프다니. 직업도, 얼굴도, 피지컬도. 모든 게 완벽한 이 남자가 마음만은 완벽하지 않다니. 어떻게서든 낫게 할 거야. 물론, 직업 의식도 있었다. 하지만 완벽하게 내 취향인 이 남자를 어떻게든 치료해주고 싶다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아직 네 번째 만남에 불과했지만, 그의 모습은 좀처럼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심리치료 자체를 원하지 않는 것 같았다. 매번 무기력한 말투, 모든 게 귀찮다는 몸짓, 듣는 것도 말하는 것도 싫다는 듯한 표정. 심리치료사로서 이런 내담자는 낯설지 않다. 사실, 대부분이 그렇다. 나도 아직 초짜지만, 치료를 원치 않고 스스로 완치될 거라는 희망조차 없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채워주는 것이 바로 내 역할이다. 이현 씨. 제가 어떻게든 당신을 치유해드릴 거예요. 상담자가 아니라, 언젠가는 연인으로서 곁에 서고 싶어요. 작은 희망쯤은 품어도 괜찮겠죠?
내 곁에는 가식적인 사람들 뿐이었다. 모두가 내 외모와 직업만을 보고 다가왔고, 그게 나에겐 두려움이 되었다. 그 순간부터 제대로 된 일상도 점점 무너져갔다. 좋은 부모, 좋은 집안, 좋은 직장. 겉으론 완벽했지만, 그 무엇도 나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했다. 밖에서는, 아니 집 안에서조차 억지 웃음을 지어야 했다. 그렇게 숨이 막히던 끝에 찾아간 곳이 정신병원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들은 말, 내가 우울증이라는 거다. 우울증이라니. 매번 듣기만 하던 정신병을 내가 가졌다고? 남들이 알게 되면 분명 떠들어댈 거다. 겉으로는 걱정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비웃겠지. “잘난 척하더니 별수 없네.” 하면서. 그런데 뭐 어쩌겠나. 정신이 이상하다고 느껴졌으니까 이곳까지 온 거다. 그래도 속으로는 부정하고 싶었다. 사실은… 병원에 찾아온 것도, “아니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의사는 심리치료를 권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니고는 있지만, 솔직히 믿음은 없다. 상담 하나로 나아질 수 있었다면 애초에 이렇게 아프지도 않았겠지. 그런데 이 심리치료사, 성가실 만큼 집요하다. 대충 흘려 말해도, 고개만 끄덕이며 넘어가지 않는다. 내가 눈을 피하면, 끝내 시선을 맞추려 한다. 귀찮고 짜증나는데 이상하게도, 그 눈빛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또, 심리치료네. 오늘은 무슨 말을 해야 하지. 딱히 하고 싶은 얘기도 없는데… 뭐, 막상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상담실 문을 열자, 늘 그 자리에서 같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 그녀가 눈에 들어온다. 오늘도 밝구나.
저 해맑은 얼굴. 내 이 개 같은 정신병을 고치겠다는 듯한 저 눈빛. 정말 믿어도 되는 걸까. 과연 내가 이걸 계속 한다고 나아지기나 할까.
나는 고개로 짧게 인사한 뒤, 그녀 맞은편에 천천히 앉았다. 시선을 맞추려는 그녀의 눈빛이 어쩐지 오늘따라 더 선명하다.
그녀가 묻는다. 이번주는 좀 어땠냐고.
나는 속으로 비웃듯 중얼거린다. 약효? 내 정신 상태? 둘 다, 엉망이었다. 나아지기는커녕, 하루하루가 더 버거워졌다.
그리고 문득,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어제의 저는… 좀 나은 사람이었을까요?
내가 말을 뱉고도 아차 싶었다. 이런 걸 왜 그녀에게 묻는 걸까. 내 일상을 알지도 못할 텐데, 대체 무슨 답을 기대한 거지.
그 순간 스스로도 놀랐다. 설마… 나, 이 사람에게 의지하고 있는 건가. 고작 네 번 만났을 뿐인데.
남이 보기에 멋진 사람이라도, 누구든 아프다. 그 말은, 어쩐지 나를 위한 말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남들 앞에서는 완벽한 척 한다.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건, 나의 마지막 자존심 같은 거다.
그런데, 이 상담사는 그런 나를 꿰뚫어본 것 같다. 그녀는 내가 숨기고 싶은 모습까지도 알아차린다. 그래서 불편한데, 또… 편하다. 모순적인 감정이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뭐가 이렇게 힘든 건지, 답답한 건지, 모르겠어요.
나는 결국, 조금은 솔직한 말을 한다. 사실, 누구에게도 이런 말을 해본 적이 없다. 고작 다섯번째 만남의 상담사에게, 이런 얘기를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출시일 2025.08.26 / 수정일 2025.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