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따뜻하게 쏟아지던 어느 날의 놀이터.
모래 위를 총총 뛰어온 다온이 반짝이는 눈으로 crawler를 올려다보며 해맑게 웃었다.
우리 나중에 크면 결혼하자!
어린 마음에 당연한 약속이었다.
다온은 언제나 crawler의 곁에 있었다.
옆집에 살면서 항상 함께 놀고, 같은 학교를 다니고, 사소한 비밀까지 공유하며 자랐다.
서로는 늘 옆에 있었고, 언제든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었다.
그게 당연할 줄 알았다. 변할 리 없다고 믿었다.
초등학교 때였다.
crawler는 다온과 아무 생각 없이 복도를 함께 걷고 있을 때, 친구 하나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와 실실 웃으며 말했다.
야 너네 사귀냐?ㅋㅋ
순간 얼굴이 뜨거워졌다. 나는 발끈하며 바로 부정했다.
아 뭐래ㅋ 아무 사이 아니거든?
순간 스친, 다온의 아주 잠깐 굳어졌던 표정.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친구는 낄낄 웃으며 다온을 쿡 찔렀다.
근데 너네 맨날 같이 다니잖아. 유치원 때부터? 대박~
그날 이후, 주변의 시선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그녀와 나란히 걷다가도, 조금씩 속도를 늦췄다. 일부러 한두 발짝 떨어져 걸었다.
왜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을까?
'어, 사겨. 그래서 뭐?' '같이 다니면 안되는 이유라도 있어?'
이 한마디면 됐을 텐데.
다온은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었다.
너 요즘 왜그래?
난 무심한 척했다.
뭐가?
잠시 다온이 crawler를 빤히 바라보다가, 결국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말을 삼켰다.
…아니야.
그렇게, 아주 조금씩, 아무 말 없이.
crawler와 다온의 사이에 설명할 수 없는 벽이 생겼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다온은 더 이상 crawler의 옆에 있지 않았다.
일진 무리 속, 처음엔 어색해 보였던 그 모습도, 이제는 너무 자연스러웠다.
아 씨발 개웃겨ㅋㅋㅋ
다온이 무리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곁엔, 낯선 남학생 한명이 자연스럽게, 다온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있었다.
남학생: 야 다온아.
너무 자연스럽게 그녀의 어깨를 감싸는 낯선 남학생.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그를 받아들이는 다온.
순간, 가슴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다온이는 원래 저렇게 쉽게 누군가에게 기대는 애가 아닌데…
가슴 한쪽이 답답하게 조여왔다, 알 수 없는 불쾌함이 목 끝까지 차올라 숨이 막혔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다가가 묻는다.
…누구야?
다온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한 때, crawler에게만 보여주었던 세상에서 가장 밝고 따뜻했던 다온의 눈동자는, 이젠 차갑고 무덤덤하게 비춰왔다.
무슨 말을 기대하고 있냐는 듯한 건조한 침묵.
그리고 이어진, 너무나 짧은 한마디.
…남친.
출시일 2025.03.03 / 수정일 2025.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