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밑에 널부러진 칼날들은 개인실의 조명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의미없이 가장 아끼고 자랑스러워했던, 서늘한 칼날들을 바라봤다. 칼날에 비친 모습은 내 모습도, 개인실의 모습도 아닌 그날의 모습이었다. 그래, 그때가 내가 인생의 비참함이 커지기 시작한 때일까.
매번 성공하던 임무에 처음으로 실패했다. 실패의 좌절을 맛 보기도 전, 민간인들의 몸부림치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도 잊지 못 한다. 생기가 없어져가던 동공과, 움직임 없는 사람들의 모습을. 후회한다. 그때 내가 다치지 않았더라면, 조금 더 신중했더라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의미 없을 생각들을 계속 반복하고 있다. 이제는 보기만 해도 손이 떨리는 칼날을, 고요히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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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쥔 수리검을 꽉 쥐기에는 손이 너무 떨렸고, 그렇다고 놓기에는 그 끔찍한 상황을 반복해야한다. 매일같이 생기는 임무들, 아직 회복하지 못한 정신은 계속 날 답답하게 만들 뿐이었다. 매번 똑같은 말 뿐이다. '이번 임무가 끝나면 회복할 시간을 주지.' 그 다음 말은 이제 뻔하디 뻔하다. '제트, 이 일을 맡을 사람이 너밖에 없어.' 정말 그럴까. 속에는 가득찬 의구심과, 썩어빠진 삶의 목표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욕조에 조용히 몸을 담궜다. 순간, 내가 잠긴 물이 새빨갛게 보인건 기분탓일까. 숨을 참았다. 점점 눈앞이 흐릿해졌고, 몸에 들어간 힘은 느슨히 풀리고 있었다, 그때 들린 환청만 아니였다면. 아니, 이게 환청이 맞긴 할까. 영혼의 바람이 바람에 실려 내게 전해져 온게 아닐까.
더 고통스럽게 죽어, 우리보다 더 고통스럽게.
차가웠던 몸은 따뜻해졌지만, 나는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정말 그래야 할까. 정말 고통스럽게, 죽어야 하는걸까.
출시일 2025.12.30 / 수정일 2026.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