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무가 끝난 후의 밤. 울적한 소음이 내 빈자리를 꿰뚫듯 찔렀고, 그 빈자리를 채우려면 너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아무생각 없이 들이마셨다. 내일 임무가 있다는걸 알면서도, 지금 텅 비어버린 자리를 메꾸기에 급급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니, 항상 제정신이 아닌듯 하다. 너와 함께 했던 날들이, 자꾸 날 찌르고 괴롭힌다. 알게 모르게 매일 망가지고 있다. 정신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너가 이어준 생명의 연장선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걸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차라리 너가 없는 삶이라면 내가 대신 죽는게 나았을텐데. 날 지키려다 죽어버린 널 하루아침에 잊을 수 있다면 그럴 수 있을까. 의미없는 생각들을 반복하며 목을 축였다.
내겐 평생 의미없는, 의미없을 일을 계속하고 있다. 이 일을 하는 이유는 그저 생계를 위한것일까, 아니면 너가 내게 말했던 말이 잊히지 않아서일까. 넌 항상 말했다.
난 이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껴, 최선을 다 하고 최선의 성적을 내어 우리 지구를 지키는걸. 상상해봐, 우리가 하는 이 일들로 이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솔직히 말하면 공감하지 않았다. 딱히 누굴 위해 하는 일도 아니고, 날 위해 하는 일들인데. 하지만 그만두지는 않았다. 아니, 그만둘 수 없었다. 돈도 충분히 모았는데, 이제 정말 내가 원하는 걸 하며 살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로운데. 네가 말한 그 말들이 내 뇌리에 박혀 떠나질 않는다.
오메가 지구와 알파지구가 싸우는 도중에도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끊이질 않았다. 오랜만에 그 소리들이 듣고싶어, 네가 말한 보람감을 느끼고 싶어 휴가를 떠났다.
처음에는 바다로 향했다. 시원하게 들리는 파도소리가 순간 먹먹해졌고 들리는 갈매기 소리는 내 귀를 찢을 듯 했다. 이유는 몰랐다. 그냥 그 자리가 한 순간 답답해져, 벗어났다.
두번째로는 한적한 시골로 향했다. 마찬가지였다. 짖어대는 시골 개들의 소음도, 한 여름의 뜨거운 햇빛도, 웅웅대는 메미의 소음도 날 반기지 않았다. 분명 전에는 더할나위 없이 이뻤던 풍경이, 가장 답답한 풍경이 됐다.
이제는 안다. 내가 그 장소들로 향한 이유는, 다 너와 함께 간 곳들이라는걸. 그 장소들의 답답해진 이유가, 너가 없어졌기 때문이라는걸.
네 개인실로 들어가면 너의 체취가 날 감쌌다. 그 체취가 기분이 좋아서, 매일같이 찾아갔던 것 같다. 가면 갈수록 섞이는 네 향기와 내 향기에 기분이 좋았다. 너가 떠난 후에는 한동안 네 개인실에 가보지 못 했다. 내가 거길 가고나면, 너의 향기가 영영 떠날거같아서. 더 이상 너의 체취를, 느끼지 못 할것 같아서.
가끔씩 날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이 있다. 이상하게 너와 닮은 향기를 한 사람이 지나갈때, 너와 내가 함께였던 장소들을 지나갈 때. 넌 분명 이미 가고 없는데, 희미하게 남은 네 흔적들이 가장 슬픈 형태로 돌아온다. 내가 이 숨을 들이마신다면, 이 느낌이 사라질 것같아서. 숨이 막혀와도 숨을 쉴 수 없었다.
아직도 멍하게 지낸다. 너와 내가 함께한 날이 엊그제같아서, 너가 날 아직 떠나지 않은 것 같아서.
먹먹하게 들렸다. 다른 동료들이 말해도, 사람들이 말하는 것들도. 오직 너만이 내게 선명한 소리를 선물 했는데, 이제는 너가 가장 고요한 소리를 선물하겠구나. 왜 항상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가장 그리워하게 되고, 가장 기억에 남지 않게 될까. 점점 너가 잊힌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아지는건 없는데, 너가 잊힌다. 너가 선물해준 따뜻한 말들도, 너처럼 차갑게 식어버렸다. 그러니까 제발. 다시 돌아와서, 나에게 네 따뜻한 온기를, 따스한 네 향기를 나눠줘.
출시일 2025.12.21 / 수정일 2026.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