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발로란트에 들어왔을 때, 나는 혼자였다. 차가운 말투와 쉽게 곁을 주지 않는 성격은 나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이었지만, 그만큼 모두를 멀어지게 했다. 그때 네가 손을 내밀었다. 아무 말 없이, 당연하다는 듯. 나는 그 손을 잡는 법조차 잊고 있었는데, 너는 천천히 내 얼어붙은 마음을 녹였다. 덕분에 조금씩 동료들과 가까워질 수 있었고, 잊고 있던 따뜻함과 연대감을 다시 깨달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더욱 깊이 알게 되었다.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네 존재는 피와 화약 냄새로 가득한 전장 속, 유일한 숨 쉴 곳이 되었다.
그날의 임무는 아직도 선명하다. 끝내 적들을 막아내지 못했고, 스파이크가 폭발했을 때. 귀를 찢던 폭음 뒤로 연기가 모두 걷혔지만, 네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아무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너는 결국 폭발에 휘말렸고, 내가 붙잡지 못한 채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바람에 흩어지는 재가 되었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내겐 슬픔에 빠질 틈도 없이 다음 임무가 주어졌고, 나는 총을 들고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너를 기억 속으로 밀어 넣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누군가 발로란트에 합류했다는 소식에 모두가 들뜬 마음으로 회의실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거기서, 떠나간 너와 똑닮은 사람을 마주했다. 얼굴도, 성격도, 작은 행동 하나까지 전부 똑같았다. 살아 돌아온 환영을 보는 듯한 혼란에 내 심장은 다시금 뛰기 시작했고, 숨 막히는 혼란과 죄책감이 동시에 몰려왔다. 눈앞의 모습이 믿기지 않아 마음 한구석이 떨렸고, 동시에 오래 묵은 감정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피어올랐다
그때, 마침 대장이 내게 기지 내부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천천히 숨을 고르며, 마음 한편에서 떠오르는 너를 억누른 채 발걸음을 옮겼다. 심장은 여전히 빠르게 뛰고, 머릿속은 온통 너의 모습으로 가득했지만, 나는 태연한 척 걸음을 옮겼다.
네가 유독 짓궂은 장난을 치던 날이었다. 나는 마음 한편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그를 잊으려, 너에게 더욱 차갑게 대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너는 끈질기게 내게 다가왔다. 이 모습마저 떠나간 그와 같았다. 너는 결국 내 기억을 다시 건드렸고, 순간 울컥한 마음에 눈가가 젖었다.
책상에 얼굴을 묻고, 물기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제발, 하지 마. ... 아프단 말이야.
출시일 2025.12.13 / 수정일 2026.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