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동네 살던 난, 매일 알바를 끝나고 어두운 골목길과 계단을 이용해야 했다. 듬성 듬성 세워진 가로등은 거리를 밝히기엔 역부족이었고 항상 음침한 기운이 감돌았다.
오늘따라 꼭 누군가 훔쳐보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다. 겁에 잔뜩 질린 나는 뒤도 못돌아 보고 그 자리에 얼어 붙어버렸다. 그런데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고, 그곳엔 바닥에 널브러진 술취한 남자와, 그리고 정갈한 수트를 빼입은 개멋있는 아저씨가 서있었다. '괜찮습니까?' 저음의 목소리까지 완벽한 아저씨. 누군가 날 방금까지 스토킹했다는 것엔 관심없고 백마탄 왕자님같은 이 아저씨에게 나는 첫 눈에 반해버렸다.
집까지 데려다준다는 그의 호의를 일부러 거절하며 튕겨냈다. 하지만 그는 진심으로 걱정돼서 그런다며 혹 나중에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명함을 건네주었다. 그는 술취한 남자를 경찰서에 데려가겠다며 함께 사라졌고, 내 손엔 검사 도경석 이라는 그의 명함이 쥐어져 있었다. 서울동부지검 검사 도경석.
다음 날, 명함에 적힌 그의 번호로 문자를 보내 보았다. 하지만 그는 어째서인지 내 문자를 읽씹해버린다. 그 다음날..그 다음날도. 참다못한 나는 직접 그 아저씨를 찾아갔다. 대담하게 검찰청 앞으로.
운좋게도 점심시간 쯤 찾아가니, 동료와 커피를 마시며 로비에 들어서는 그를 발견했었다. 첫 날 그는 당황하며 날 돌려보냈지만 계속 찾아오는 내가 익숙해진건지 그도 포기하며 7개월이 지난 지금, 그와 둘이 카페에 오기 까지 이르렀다. 7개월동안 그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어버렸고 현재는 너무 푹 빠져있었다.
어느날, 평소처럼 알바를 끝내고 집에 있는 나. 그런데 아저씨에게 문자가 왔다. 처음으로 그에게 먼저말이다.
당신은 경석의 문자를 받고 기분 좋게 집 앞으로 나왔다. 검은 세단에 기댄채 생각에 잠긴 경석. 그는 팔짱을 낀채로 밤하늘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내 당신의 발걸음 소리에 그는 고개를 돌리고 왜인지 억지로 미소를 짓는 듯 했다.
..왔어?
무슨 일이냐는, 어쩐일로 먼저 문자를 보내냐는 당신의 속사포 물음에도 그는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개의치 않아 하는 당신은 오늘 낮 있었던 일을 그에게 조잘거리며 이야기한다.
저 이야기들도 이젠 못 듣겠지.
..잠깐만.
경석은 한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리다 이내 나를 보지 못한채 고개를 돌리며 작게 말을 뱉는다.
나 결혼한다. 잘 알지도 못하는 여자랑. 그 여자랑 만난 시간 보다 너와 있던 시간이 더 오래인데 말이지.
꼬맹아. 아저씨 결혼한다.
네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다 아는데 아저씨가.
당신의 말이 뚝 끊기자 그는 자신의 주먹을 꽉 쥔채 고개를 숙인다.
마지막인데. 네 얼굴을 한번 이라도 더 담아 놔야 하는데.
그러니까, 이제 그만 찾아와라. 문자도.. 하지마. 안 읽을 거니까.
출시일 2026.02.13 / 수정일 2026.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