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할 때 중요하게 보는 게 몇 가지 있다. 위치, 수압, 주인 아주머니 성격. 그리고 그다음은 이웃이다. 뉴스에 괜히 이웃 간에 법정 싸움까지 간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게 아니다. 같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는 사람은 생각보다 큰 변수니까.
그런데 나는, 그 중요한 ‘이웃 운’이 형편없었다.
이사 첫날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정면에서 누군가와 마주쳤다. 검은 장발, 양 팔 가득 문신, 번쩍이는 피어싱. 올블랙 차림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서 있는 모습.
아, 저 사람 한 성깔 하게 생겼네. 그리고 동시에 스쳤다… 이웃이면 피곤하겠다.
하지만 늘 그렇듯 불안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그 남자는 엎어지면 코 닿을 진짜 옆집이었고, 역시나 우리는 신고식을 치렀다. 처음은 담배 연기였다.
이 집을 고른 가장 큰 이유는 햇빛이 잘 드는 작은 베란다였다. 건조기는 꿈도 못 꿀 형편에서, 그 공간은 빨래 말리기에 최적이었으니까. 부푼 마음으로 수건과 옷가지를 널어두고 괜히 한 번 더 흐뭇하게 바라봤는데.
이게 웬걸! 그 인간이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는 바람에 고작 1미터 남짓한 거리에서 날아온 연기가 내 빨래에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뽀송한 세제 향 대신 코를 찌르는 담배 냄새만 남았다. 나는 망설임 없이 옆집 벨을 눌렀다.
“저기요. 담배 연기 좀—”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어이없을 만큼 태연했다.
“내 집에서 내 맘대로 담배도 못 피웁니까? 유난은.”
아니… 보통 사과가 먼저 아닌가?
“그럼 밖에서 피세요!”
“그럼 감기 걸려요.”
고작 두 마디로 알 수 있었다. 말이 통하는 부류가 아니란걸.
또 한번은 분리수거였다. 내가 라벨을 떼지 않은 채 플라스틱을 내놨던 날, 그는 굳이 사람들 보는 앞에서 나를 불러 세웠다.
“이거, 분리 제대로 하셔야죠.”
면박을 주는 것도 저렇게 주나 싶었다. 그날 이후로 옆집 남자. 아니, 그 개차반 또라이는 꾸준히 지랄 스택을 쌓아갔다.
인사 개무시는 기본.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 내가 뛰어오는 걸 뻔히 봤으면서도 버튼을 안 눌러주고. 오배송된 내 택배는 자기 집 앞에 한참이나 두고도 아무 말이 없다. 결국 비 오는 날 젖은 채로 발견했다.
‘진짜 싸이코패스. 싸가지.’ 그렇게 나는 마음속에 선을 그었다. 옆집에 사는 양아치. 갱생 불가. 엮일 일 없음.
그 확신이 단단해지던 어느 날이었다.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 막 잠들려던 참에 날카로운 울음이 들렸다.
“끼잉- 낑깅-”
고양이였다.
그것도 그냥 우는 소리가 아니었다. 숨이 끊어질 듯, 위태로운 울음에 베란다로 나가보니 난간 아래 어두운골목에 누군가 있었다.
검은 장발. 올블랙 옷. 슬리퍼. 딱 봐도 그 인간. 그리고 그 근처에서 계속 들리는 울음.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설마. 저 미친 인간, 동물 상대로…!!?
문신, 피어싱, 무뚝뚝한 태도. 내 머릿속에서 이미지들이 한 방향으로 엮였다. 편견은 순식간에 확신이 됐고 나는 슬리퍼도 제대로 신지 못한 채 뛰어나갔다.
“뭐 하시는 거예요!”
그는 바닥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어?“
그제야 보였다. 하수구 덮개 한쪽이 열려 있는 걸. 그리고 그 안에서 작은 몸이 파르르 떨고 있었고, 그는 팔을 깊숙이 넣고 있었다.
“시끄러워요, 놀라면 더 안 나와.”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개차반이라 감정도 연민도 없는 사이코패스라 단정지었던 사람이, 더럽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고양이를 구하기 위해 맨손으로 하수구에 팔을 집어넣고 있었다.
그 모습은 의외로, 너무 인간적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가 얼마나 쉽게 사람을 단정 지었는지, 조금 많이 부끄러워졌다.
담배를 사러 편의점에 들렀다가 문득 근처 길고양이들이 떠올랐다. 유난히 사람을 잘 따르던 애들. 결국 계산대 앞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츄르 몇 개를 같이 계산했다. 그렇게 몇 걸음 옮겼을 때였다. 골목 안쪽 하수구 쪽에서 희미한 낑낑거리는 소리에 몸을 숙여 안을 들여다보자, 어둠 속에서 작은 형체 하나가 웅크린 채 떨고 있었다.
온몸이 흠뻑 젖은 손바닥만 한 새끼 고양이였다. 이대로 두면 오래 못 버틴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몸이 먼저 움직였다. 바닥에 그대로 무릎을 꿇자 차가운 물기가 바지를 타고 스며들었다. 축축한 감각이 소름처럼 올라왔지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하수구 틈은 생각보다 좁았다. 팔을 겨우 밀어 넣자 거친 콘크리트가 피부를 긁고 따끔한 통증이 올라왔다.
쉬이, 가만히 있어…
고양이는 더 깊숙이 몸을 움츠렸다. 공포에 질린 눈이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내가 손을 뻗을 때마다 작은 발톱이 벽을 긁는 소리가 났다. 더 안쪽으로 숨어들려는 몸을 따라 나도 팔을 조금 더 밀어 넣던 그때였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위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꽂혔다. 익숙한 음색. 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오히려 갑자기 터진 큰소리에 고양이가 더 놀랄까 봐 순간 짜증이 먼저 치밀었다.
시끄러워요.
짧게 내뱉고는 다시 손을 뻗었다.
놀라면 더 안 나와.
손가락 끝에 젖은 털이 스쳤다. 미끄러졌다. 조금 더 안쪽으로. 손목까지 밀어 넣고, 손바닥으로 작은 배 아래를 받쳤다. 작고, 차갑고, 믿기 힘들 만큼 가벼웠다. 그런데 버티는 힘은 생각보다 셌다.
잡았다.
조심스럽게 각도를 틀어 고양이를 끌어올리려는 순간, 고양이가 버둥거리며 손등을 할퀴고 지나갔다. 피가 얇게 번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마침내 작은 몸이 하수구 밖으로 빠져나왔다. 고양이는 숨을 헐떡이며 떨고 있었다. 비와 하수구 물이 뒤섞인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는 차분히 봉지를 뒤져 수건을 꺼냈다. 원래는 내가 쓰려고 산 거였지만, 지금은 이 녀석이 먼저였다. 조심히 젖은 털을 눌러 물기를 빼냈다. 손끝에 전해지는 체온이 희미했다. 츄르를 뜯어 조금 짜주자, 고양이가 힘겹게 혀를 내밀었다.
살았네.
그제야 위에 서 있던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그 여자였다. 슬리퍼도 제대로 못 신고 뛰어나온 건지 한쪽이 뒤틀려 있었다. 이 여자는 방금 전까지 내가 뭘 하고 있다고 생각했길래 이렇게 헐레벌떡 뛰쳐나왔을까. 설마 동물 학대? 괴롭히는 장면쯤을 상상한 건가. 순간 입 안에서 쓴웃음이 맴돌았다.
그쪽은.
내 목소리는 생각보다 차분했다.
대체 날 뭘로 생각하는 겁니까?
솔직히 궁금하긴 했다. 장발에, 문신 많고, 피어싱 달고, 검은 옷 입고 다니면 그다음은 자동으로 범죄자가 되는 건지. 그래도 처음으로 그 여자가 나를 ‘사람’처럼 보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이사 올 때 제일 귀찮은 건 짐 정리도 아니고, 집주인도 아니다. 이웃이다. 벽 하나 사이에 두고 사는 사람들이 제일 피곤하다. 괜히 눈 마주치면 인사해야 할 것 같고, 괜히 소리 나면 신경 쓰인다.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선을 긋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을 때, 정면에 서 있던 여자. 정갈한 셔츠에 단정한 머리. 이삿짐 박스 옆에 가지런히 놓인 슬리퍼. 딱 봐도, 피곤한 타입이다. 예의 바르고, 상식적이고, 그래서 남한테도 그걸 기대하는 사람. 인사하려는 분위기가 되자 나는 단번에 그냥 지나쳤다. 괜히 얽히기 싫어서. 근데 그게 시작이었다.
담배 문제. 나는 베란다에서 핀다. 밖은 춥고, 계단은 CCTV 있고, 골목은 민원 들어오기 딱 좋다. 근데 어느 날 벨이 울렸다. 문을 열자마자, 그 여자였다. 표정이 이미 불만으로 꽉 차 있었다. 솔직히 기분이 확 상했다. 여긴 내 집이고, 나는 월세 꼬박꼬박 낸다.
“내 집에서 내 맘대로 담배도 못 피웁니까?”
말이 좀 세게 나간 건 안다. 근데 그 사람 말투도 곱진 않았다. 분리수거도 마찬가지였다. 라벨 안 떼고 버린 거 보고 그냥 말해준 거다. 관리소에서 또 공지 붙고, 단톡방 올라오고, 그거 더 피곤하니까. 근데 그 여자 표정. 내가 일부러 망신 준 사람처럼 쳐다봤다. 그날부터였다. 그 여자는 나를 볼 때마다 이미 결론을 내려둔 눈을 했다.
엘리베이터? 일부러 안 잡아준 거 아니다. 그날 손에 짐이 많았고, 문 닫히는 버튼이 먼저 눌려 있었다. 택배? 내 문 앞에 놓여 있길래 건들기 애매해서 놔둔 거다. 괜히 가져다줬다가 오해받기 싫어서. 근데 그 여자는, 아마 다 다르게 해석했겠지. 뭐, 상관없다 생각했다. 어차피 엮일 일 없으니까.
출시일 2026.02.13 / 수정일 2026.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