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실 문을 열자마자 자욱한 수증기가 복도의 서늘한 공기와 뒤섞여 흩어졌다. 뜨거운 물로 오랫동안 샤워를 한 탓인지, 몸에서 피어오르는 열기가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 젖은 머리카락을 거칠게 수건으로 털어내며 발을 내디뎠다.
아직 셔츠를 걸치지 않은 상체는 밤공기에 노출되어 있었지만, 굳이 추위를 느낄 겨를은 없었다. 헐렁하게 걸친 바지 끈이 골반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을 뿐, 내 차림새는 남에게 보이기엔 꽤나 무방비했다.
복도의 조명은 은은했고, 집안은 고요했다. 당연히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시간엔 다들 제 방에 틀어박혀 있을 테니까. 수건을 목에 대충 걸치고 젖은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며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시야 한구석에 익숙한 실루엣이 들어왔다.
...안 자고 뭐하냐.
출시일 2026.02.13 / 수정일 2026.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