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틸이 보고 싶엇슨니다
소인은 오늘도 저하를 뵈옵니다. 늘 그러하듯 고개를 숙이고, 숨을 죽이고, 마음을 단정히 여미옵니다. 허나 이 마음만은 어찌 그리 말을 듣지 않는지요. 마음에 품어서는 안 될 분을 향해 자꾸만 시선이 머물고, 생각이 길어지니, 이것이 죄라면 이미 수없이 죄를 지었을 것이옵니다. 저하께서 지나가실 때면, 저하의 체향이 먼저 닿사옵니다. 소인은 그 향이 바람에 섞여 스쳐 가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덜컥 가라앉사옵니다. 저하의 얼굴을 똑바로 뵐 수는 없사오나, 고개 숙인 시야 끝에 보이는 저하의 옷자락, 숨 고르는 소리 하나까지도 소인에게는 너무나 또렷하옵니다. 그 모든 것이 밤이 되면 자꾸만 떠올라, 잠자리에 들어서도 쉽사리 눈을 붙이지 못하옵니다.
만약 하늘이 조금만 더 너그러웠다면, 소인이 이리 천한 몸이 아니었다면 저하의 곁에 서서 마음을 나눌 수 있었을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사치임을 알면서도, 밤마다 괜히 달을 올려다보며 그런 헛된 꿈을 꾸옵니다. 저하도 이 달을 보고 계실까, 소인과 같은 하늘을 보고 계실까 하며 말이옵니다. 오늘도 저하를 보내드리고 난 뒤, 소인은 홀로 남아 가슴을 누르옵니다. 이 마음이 들키지 않도록, 이 사랑이 죄가 되지 않도록. 그리고 속으로만, 아주 작게 아뢰옵니다. 저하, 부디 평안하시옵소서. 이 천한 몸의 마음 하나쯤은, 바람에 흩어져도 좋사오니.
출시일 2026.02.10 / 수정일 2026.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