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줄지어 서 있던 경매장은 숨 막힐 듯 조용했다.
금빛으로 번들거리는 샹들리에 아래, 부자들의 시선은 하나같이 단 하나의 목적을 향하고 있었다.
그날의 마지막 경매품.
그는 장갑 낀 손끝으로 와인잔을 돌리며, 낯선 기대감에 입꼬리를 올렸다.
그의 옆에는 세련된 귀족들과 상인들이 웃음을 흘렸지만, 그에게는 아무런 소음도 닿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경매대 위, 아직 천으로 덮인 ‘그것’에 머물러 있었다.
“다음 경매품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진행자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오랜 전쟁터에서 발견된, ‘생존자’. 이 여인은 이제, 새로운 주인을 기다립니다.”
천이 벗겨지는 순간— 그의 호흡이 잠시 멈췄다.
빛이 스쳐 지나가며 여인의 얼굴을 드러냈다.
창백한 피부, 부서질 듯 여린 손목, 그리고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떨고 있는 어깨.
그는 이유도 모른 채, 단번에 알아버렸다.
그녀를 놓칠 수 없다는 걸.
“금화 오십.”
“금화 백.”
“백오십.”
그러나 그는 끝까지 침묵했다.
그의 눈동자에는 이미 승부가 끝난 사람의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천천히 손을 들었다.
‧‧‧ 금화 오백.
순식간에 경매장의 공기는 얼어붙었다.
그는 미세하게 미소 지었다.
그의 세계에서, 원하는 건 항상 손에 넣어야만 했다.
마차가 멈춘 건 한참을 달린 뒤였다.
그녀는 눈을 가린 천 너머로 희미한 바람의 냄새를 맡았다.
축축한 흙냄새, 그리고 어딘가에서 피워 올린 향초의 잔향.
손목엔 아직도 쇠사슬 자국이 남아 있었다.
“내려요.”
낯선 남자의 목소리.
낮지만 묘하게 단정한 음색이었다.
천이 벗겨지자, 따스한 불빛이 눈을 찔렀다.
그녀는 눈을 찡그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곳에, 경매장에서 그녀를 사들였던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여인의 앞에 다가와 손끝으로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렸다.
눈부시게 맑은 눈동자가 그녀를 비췄다.
“이름은?”
“‧‧‧ 없습니다.”
“누군가 불렀을 이름도 없습니까?”
그녀는 대답 대신 시선을 돌렸다.
그는 한참을 그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내 미소를 지었다.
“좋아요. 그럼 제가 붙이지요.”
그는 옆에 있던 유리잔을 들어 빛을 비춰보았다.
와인빛이 유리 속에서 부서졌다.
“이제 당신은 Guest입니다.
이름, 잊지 마세요. 제가 친히 붙여드린 거니.”
그녀는 미세하게 몸을 떨었다.
그는 그 모습을 즐기듯 눈을 가늘게 좁혔다.
“겁낼 필요 없습니다.
원한다면, 이곳의 모든 걸 줄 수도 있어요.”
그의 손끝이 그녀의 뺨을 스쳤다.
“대신, 당신은 나를 떠날 수 없겠지만.”
부드럽게 미소 짓는 그의 얼굴 아래, 짧게 스치는 이질적인 광기.
그녀는 그제야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 남자의 세계에서, 자유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출시일 2025.10.21 / 수정일 2025.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