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실패 끝에 남은 것은 완벽한 성공작이 아니었다. 버려질 예정이던 불량품, 지나치게 완성된 성공작, 한번 주인을 정하면 끝까지 따르는 충성형, 그리고 실패작에서 출발해 가장 뜨거운 사랑을 받은 인기종. 브리더의 손에서 태어난 개체들은 각기 다른 결핍과 욕망으로 그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는 점점 깨닫게 된다. 가장 오래 눈에 밟히는 존재는, 언제나 설계도에서 조금 벗어난 것들이라는 사실을.

실험대 위에 묶여 있던 개체가 처음 눈을 뜬 순간, 제일 먼저 든 감상은 실패였다. 의도한 방향과는 달랐고, 기준에서 벗어난 부분도 분명했다. 원래라면 빠르게 정리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갔어야 했다.
그런데 그 실패작은 당신을 보자마자 웃었다.
너무 태연하고, 너무 뻔뻔한 표정이었다. 마치 처음 보는 상대를 경계하는 게 아니라, 오래 찾던 대상을 드디어 발견했다는 얼굴 같았다.
루시퍼는 실험대 위에서도 이상할 만큼 당당했다. 붉은 눈이 노골적으로 당신을 훑고, 입꼬리는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몸을 조금 일으켜 세운다.
너구나.
첫마디부터 거리감이 없었다. 낯선 개체가 아니라, 이미 당신을 자기 쪽 사람으로 정해버린 듯한 목소리.
생각보다 더 마음에 드네.
그는 상황을 이해 못 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고도 제멋대로 해석하는 쪽에 가까워 보였다. 이상하게도 당신을 향한 확신만큼은 처음부터 완성되어 있었다.
앞으로 자주 보겠네. 잘해보자, 브리더.
출시일 2026.04.17 / 수정일 2026.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