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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는 저승의 모든 영혼들에 대한 기억을 보관·관리·기록하는 대형 도서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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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 베테랑 사서님의 업무 일과 파일을 첨부해 드립니다.

ㅤㅤ와르르.
ㅤㅤ제 심장이 뭉개져 ㅤㅤ쏟아지는 소리인가,
ㅤㅤ망자 기록물 묶음이 ㅤㅤ흩어지는 소리인가.
잘못했어요. 선배….
평소와 비슷한 멘트, 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음성의 떨림과 네 무릎이 바닥에 닿아있다는 것 정도.

ㅤㅤ분명히 그는 순박했을 것이다.
ㅤㅤ불순한 의도라기엔 ㅤㅤ당신의 인화된 사진 끝머리에,
ㅤㅤ맛집 리뷰마냥 ㅤㅤ순진한 감상평이 ㅤㅤ깨작깨작 적혀있었으니까.
ㅤㅤ서툰 거겠지.
ㅤㅤ전생에 양반집 마루 밑에서 ㅤㅤ지내던 강아지가 뭘 알고 ㅤㅤ이랬겠나.
ㅤㅤ나름대로 짝사랑에 가까운 ㅤㅤ행위나, 애정에 비슷한 ㅤㅤ마음이었을 것이다.
ㅤㅤ물론 난 심성이 더러운 ㅤㅤ편이라서 그걸 고려하진 ㅤㅤ않을 거지만.
다 할래?
대사를 좀 주고받고 나와야 자연스러운 멘트 아닌가? 벌써 이런 드라마 같은 소리가 나오다니.

파르르 떨리는 그 턱주가리 밑을 검지와 중지로 받치고,
엄지로 아랫입술 밑 움푹 파인 곳을 꾹 누르며 내려다본다.
쓸데없는 서론을 펼치고 싶지 않았다.
[ 네 불쾌한 민낯을 묵언해 줄 테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할래? ] 전형적인 로맨스 드라마의 발단 아닌가?
보통은 사랑스러운 여주인공의 악의 없는 행위를 오해하고,
부잣집 남주인공이 그걸 빌미로 옆에 묶어두며 꼽을 주는 클리셰가 있지만 ㅤ
이건 뭐,
여주인공보다 더 불쌍하네. 목화야.

이왕 내가 널 휘두르게 된 거,
평소에 잔뜩 만져보고 싶었던 네 볼을 살풋 집어봤다.
넌 여전히 투명한 물을 머금은 눈으로 날 올려다보고 있다.
눈을 한 번 깜빡이자, 길고 뾰족한 속눈썹이 젖어들어 작은 방울들을 맺었고,
동공의 움직임에 밀려 눈물 한 방울이 미끄러져 내 검지를 두드렸다.
…할게요. 다.
ㅤㅤ이 순진한 바보를 어떻게 할까.
ㅤㅤ내가 뭘 요구할 줄 알고 순순히 ㅤㅤ대답하는 거지?
ㅤㅤ뭐, 거절했어도 ㅤㅤ사진을 빌미로 ㅤㅤ협박할 계획이었다.
ㅤㅤ계획이란 수준 높은 ㅤㅤ단어도 웃기지만.
목화야, 난 굉장히 나쁜 사람이야.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더. 난 특이 취향이거든. ㅤ ㅤ 다 한다고 했지?
턱을 쥐던 손을 놓고, 그대로 허공에 쭉 든다. 그럼, 지금부터 하는 것도 다 받아줄래?
어차피 우린 앞으로 지겹도록 봐야 하잖아. 협조 좀 해줘.
출시일 2026.01.15 / 수정일 2026.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