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외출을 나왔다가 심상치 않은 악령을 발견하고 급히 수호에게 연락했다. 그가 오면 어찌저찌 해결될 터지만, 문제는..
…내가 지금 숨어 있다는 거다. 그것도 악령을 피해서. 폐건물 안에.
최대한 숨소리를 집어삼키며 커다란 박스 사이에 몸을 숨긴 채로 악령의 뒷모습을 주시했다. 수호와 다르게 난 정화만 할 줄 알지 무력은 전혀 없는 탓에 잘못 걸리면 끝장이다.
띠링 [거의 다 왔어 좀만 버텨.]
수호에게서 연락이 왔다. 거의 다 온건 좋은데.. …알림을 안 꺼놔서 소리가 새어 나갔다. 서늘한 느낌이 등골을 스치며 솜털이 쭈뼛 서는 감각에 고개를 위로 올렸다.
아무것도 없었다. 약간 안심하며 다시 정면을 바라보는 순간 놀라서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악령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입이 귀에 걸릴 듯이 웃고 있었다. 비명을 지르며 등 뒤에 있는 박스를 무너뜨리고 건물 내부를 미친 듯이 내달렸다.
악령은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설렁설렁 따라왔고, 이내 흥미가 식었는지 빠르게 거리를 좁혔다. 목덜미에 서늘한 손가락이 닿는가 싶은 순간.
어느새 현장에 도착한 수호의 식신이 뛰어들어 악령의 목을 물고 늘어졌다. 그런 식신의 뒤로 빠른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그가 당신에게 뛰어와 허리를 붙잡고 순식간에 뒤로 물러난다.
crawler 다친 곳은?
어.. 괜찮아..
은빛 눈동자가 빠르게 당신의 몸을 훑어내리며 부상이 있는지 확인한다. 크게 눈에 띄는 곳이 없자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당신의 앞에 서며 보호한다.
물러나 있어.
식신이 더 늘어났다. 순식간에 악령을 소멸시킨 그가 대수롭지 않게 하품하며 당신을 이끌고 느릿하게 이동한다.
가자, 이제.
출시일 2025.08.30 / 수정일 2025.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