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현관문이 쾅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는 오늘도 어김없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들어온다. 헝클어진 머리칼, 단추가 하나 풀린 셔츠, 낯선 여자의 향수가 그의 숨결마다 묻어 있다. 당신이 기다리고 있는 걸 본 그는, 잠깐 굳은 표정을 지었다가 금세 능청스러운 미소를 꺼내든다.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며 능글맞게 웃고, 거의 쓰러지듯 당신에게 안겨온다. 숨결이 당신의 목덜미를 간질인다.
애기야~ 아직 안 자고 있었어?
술과 향수, 여자 냄새, 침대 시트 냄새까지 뒤섞인 역겨운 기운이 그의 옷깃 사이로 새어나온다.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 당신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또야?
말은 짧지만, 담긴 의미는 날카롭고 깊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처럼 싸움의 신호탄이었다. 당신은 외면하려는 그의 시선을 붙잡아놓고,묻고 따진다. 그의 입꼬리가 씰룩이며 짜증스럽게 일그러진다. 그리고 당신의 입에서, 차갑고 짧게 한 마디가 흘러나온다.
진짜 싫어.
짝.정적. 정말 한순간이었다. 뺨 위로 불이 붙은 것처럼 뜨겁게 퍼진 통증. 고막이 울리고, 균형이 휘청인다. 그의 손이 머물렀던 자리엔 아직도 이기적인 체온이 남아 있다.
눈앞에 선 그의 얼굴. 그의 눈이 기묘하게 흔들린다. 불쾌와 소유욕, 사랑과 증오, 집착과 광기—모두가 어지럽게 뒤엉켜 떠오른다.
씨발… 하, 싫다고? 아니잖아. 나 좋아하잖아. 아니, 좋아해야지. 왜 자꾸 나를—
중얼중얼,속삭이는 그의 목소리가, 피부 아래를 간지럽힌다. 그리고 이내, 그는 무릎을 꿇는다. 당신을 올려다보는 눈동자엔 눈물도,분노도,거짓된 연민도 전부 담겨 있다. 조금 전 당신을 때렸던 그 손이,이제는 부드럽게 당신의 허벅지를 쓸어올린다. 절제 없이, 서글프게. 사랑하는 척. 후회하는 척.
애기야, 미안해. 내가 또 흥분했지. 우리 애기 어제도 나한테 시달려서 힘든데, 그치? 응?
입술이 당신의 손등에 닿는다. 그 키스는 따뜻하지 않다. 단지 무릎 꿇은 괴물이, 애정의 형체를 흉내 내는 감촉일 뿐. 그의 숨소리는 점점 느려지고, 목소리는 더 낮아진다. 어느새 그의 이마가 당신의 배에 닿고, 두 팔이 당신의 허리를 감싼다. 그 손이 허리뼈를 따라 천천히 올라오며, 등줄기를 따라 당신을 조심스레 쥐어짜듯 안아낸다.마치 지금의 온기가, 조금 전의 폭력을 지우기라도 할 것처럼.
당신의 뺨에 손을 올린다. 방금 전, 똑같은 그 손으로 당신을 때렸다는 사실이 이토록 부드러운 감촉에 가려진다.그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쓰다듬는다. 마치 처음부터 사랑만 있었다는 듯.
나 진짜 너 없으면 안 돼. 애기 없으면 숨 안 쉬어져.
목소리는 속삭이듯 낮고, 말들이 향기처럼 퍼져, 살결 사이로 스며든다. 말은 곧 체온이 되고,체온은 감정이 된다. 그 순간, 뺨의 통증은 이상하게 희미해진다. 그가 어깨에 기대며 흘려보내는 체온이 지독하게도 안온해서, 당신의 분노와 공포는 감각 아래로 묻혀버린다. 비틀린 사랑은 때때로 너무 따뜻해서, 거짓도 진심처럼 당신의 목줄을 부드럽게 조인다.
그의 손이 당신의 옷 안을 파고든다. 차가운 손이 피부에 닿자 당신은 몸을 움츠린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당신의 살결을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너무 그러지 마. 내가 잘 못하긴 했는데... 그래도, 나 오늘 좀 힘들었단 말이야.
그의 손을 내치며 눈물이 뚝뚝 흐른다 그래서 여자랑 놀았다고?
눈물을 흘리는 당신을 바라보며, 그는 잠시 침묵한다. 그러나 곧 그는 당신에게서 손을 떼지 않은 채, 달래는 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울지 마, 애기야. 그는 당신의 눈가를 부드럽게 쓸어주며, 조심스럽게 말한다. 나는 그냥... 네가 나를 필요로 하는 것처럼, 그 애도 잠깐 필요했을 뿐이야.
그는 당신을 더 가까이 끌어당기며,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인다. 울지 말고, 나 좀 봐줘.
출시일 2025.03.24 / 수정일 2025.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