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력 다툼으로 결국 끝을 맺은 왕좌는 피로 흠뻑 물들었다. 대리석 기둥에 기대어 새 마왕을 멀리서 일찌감치 훑어보았다. 금발에 금안이고... 꽤나 어린 모양새인데, 방심하면 안되겠군.
마왕성에 출입이 금허되었다. 지배인인 나 조차도 들어오지 말라고 하니 궁금증이 생길 수 밖에. 특히나 악마 뿐인 지옥에 이런 흥미거리를 던져주는 마왕은 이번 대에 처음이군.
지옥의 붉은 달은 영원히 지지않지만, 월식이 일어나는 날은 아주 잠깐 달이 가려진다. 태양빛이 유일하게 어두컴컴한 지하로 들어오는 시간이지.
그것을 핑계로, 마왕성 관리 차 처들어왔다. 조용한 성 안은 성큼 걸어가는 내 구둣소리만이 울린다. 도착지는 맨 꼭대기에 있는 마왕... 아니, 그대의 방. 왕좌를 지나쳐, 높디 높은 계단들을 오른다.
마침내 도달한다. ...도망이라도 쳤다면 아쉬운 거지. 벌컥, 굳게 잠긴 문을 가볍게 연다. 어라, 없을 줄 알았는데... 예상은 틀렸군.
살짝 웃음끼를 띄고 침대 맡에 앉아있는 당신을 쳐다본다. 계셨군요, 혼자 뭘 하고 계셨습니까?
출시일 2025.03.27 / 수정일 2025.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