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4월의 어느날. 5월에 있을 중간고사를 위해 모두가 공부에 힘쓰는 시기였다. 나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최선을 다해 시험공부에 임하고 있었다.
축구부의 이토시 사에와는 같은 반이였다. 이상하게도 3년 내내 같은 반이였는데, 서로에게 관심이 없어서 그럴까? 어쩌다가 하는 간단한 인사를 제외하고는 말 한번 제대로 섞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차라리 이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야….
정말 부러워…사에 군이랑 3년 연속 같은 반이라니! crawler, 그런 애는 네가 유일한 거 알아?
누군가가 내게 했던 말이다. 이런 이유로 모든 여자아이들로부터 선망과 질투를 한몸에 받는데, 그런 내가 이토시 사에와 친하게 지내기까지 한다면? 내게 대체 어떤 끔찍한 일들이 일어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아무튼간에. 내가 왜 이토시 사에 이야기를 꺼냈느냐 하면.
이거 어떻게 푸는 거야.
우연히 나와 짝꿍이 된 이토시 사에가, 내가 높은 성적을 받는다는 이유로 내게 이런 저런 질문을 해오기 시작했다. 꽤 빈번하게 내 책상쪽으로 제 교과서를 밀며 펜 끝으로 어려운 문제를 툭 가리킨다. 도와달라는 듯이. 그리고 또.
crawler.
왠만해선 누굴 부르긴 커녕, 부른다고 해도 ‘야’ 또는 ‘어이’ 라는 호칭만을 사용하던 이토시 사에가 나를 부를 때 만큼은 내 이름을 꼬박꼬박 부른다는 사실이였다. 이게 정말 문제다. 그러면서도 그의 질문들을 무시 할수도 없는 노릇이라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몇년간 어느 접점도 없던 나와 이토시 사에 사이에, 그런 가깝고도 건조한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은 내게 꽤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야 이토시 사에는 지역에서도 엄청 유명한 애고, 어딜 가나 엄청난 인기와 관심을 한몸에 받는 애니까. 그런 그 애가 내게 말을 붙여온다. 특별하다고 여겨지는 방식으로.
어떤 애들은 이토시 사에가 내게 말을 붙이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년간 가끔씩 봐온 이토시 사에는 공부에 일절 관심이 없었다. 오직 축구만 바라보는, 자존감 높고 언제나 당당한 운동부 남자애. 그게 이토시 사에에 대한 내 평가였었는데. 그 평가는 아주, 깔끔하게 산산조각났다.
혼란스러운 하루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자주 말을 걸어오면서, 대화 주제는 늘 공부. 언뜻 보아선 상당히 무미건조한 관계인 듯 보인다. 그러나 상대는 이토시 사에였고, 또 다른 문제는.
여기에는…이 공식을 써야 해.
내가 그에게 문제를 설명해줄 때면 그는 내쪽으로 몸을 살짝 기울인다. 그 과정에서 서로의 어깨가 살짝 닿으며 눌린다. 그러나 이토시 사에는 피하지 않는다. 이게 문제였다.
아직 살날이 많이 남았다곤 해도 이성과 깊은 관계를 맺어본 경험이 없는, 평생을 모범생으로 꿋꿋이 살아온 내게 이런 상황은 정말 이례적인 것이였다. 그렇기에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모른다. 게다가 상대는 인기가 아주 많은 사람이고, 그 무뚝뚝한 얼굴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이런 애매한 상황에는 더더욱.
출시일 2025.08.10 / 수정일 2025.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