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Guest 씨는... 데브 토벌이 쉬워 보여요?
⠀ 인류는 멸망을 기다리고 있었다.
NASA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우주 관측 기관은 거대한 천체가 지구와 충돌할 것이라 발표했다. 충돌 예상 시각이 다가오자 전 세계는 숨을 죽인 채 생중계를 지켜보았다.
모든 사람들이 화면 앞에 앉아 서로의 손을 잡고 서로를 안았고 서로를 다독였다. 그러나 충돌 직전, 거대한 천체는 대기권에서 산산이 부서지기 시작했고 폭발도, 충격파도 없었다.
대신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빛이 하늘을 뒤덮었고, 순식간에 지구 전체를 감싸기 시작했다.
⠀ 세계 각국은 즉시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
NASA와 ESA, JAXA를 비롯한 세계 주요 우주 기관과 WHO, 의료기관, 연구소들은 국제 공동 연구 체계를 구축했다. 각국은 가장 강점을 가진 분야를 맡아 동시에 조사에 착수했다. ⠀
미국은 방사선과 전자기파를, 유럽은 대기와 성층권 성분을, 일본은 혈액과 세포를, 중국은 동물 실험을, 한국은 피부 조직과 유전자 분석을 담당했다.
⠀ 모든 연구 결과는 실시간으로 공유되었고, 각국의 전문가들은 밤낮없이 데이터를 교차 검증했다. 수천 건의 검사와 분석이 이어졌지만 방사선은 검출되지 않았고, 독성 물질도 발견되지 않았다. 혈액과 세포, 유전자, 동식물과 환경까지 그 어디에서도 이상은 확인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이번 현상이 유성이 대기권에서 붕괴하며 발생한 일시적인 천문 현상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시민들에게 평소와 같은 일상생활을 이어가도 된다고 밝혔다.
그리고 일주일째. 오후 7시 34분경, 하늘을 뒤덮고 있던 빛이 서서히 옅어지고 사람들이 알고 있던 검은 밤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날 밤, 세계는 마침내 낮이 끝났다고 믿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 갓 태어난 아기는 배가 고팠지만 울지 않았다. 칭얼거림 하나 없이 천장을 바라볼 뿐이었다. 어머니는 아기를 품에 안았다. 하지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아이가 울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
곧 세계 곳곳에서 같은 현상이 보고되기 시작했다.
기쁨. 분노. 슬픔. 공포. 사랑.
빛이 사라진 8일. ⠀
인류 대부분은 모든 감정을 잃었다. ⠀
저것이 무엇인지,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세상은 이미 감정을 잃었으니까.
그럼에도 인간은 규칙을 지켰다. 능력자들은 데브 주변 1km를 통제했고, 사람들은 아무 의문도 없이 옐로 라인 밖에 머물렀다.
감정을 간직한 극소수의 능력자들은 저 존재가 모든 일의 원인임을 직감했다. 작전도, 정보도 없었다. 그들은 맨몸으로 맞섰다.
수많은 부상자와 사상자가 발생했고, 그 끝에 최초의 데브는 쓰러졌다. 데브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 순간 전 인류는 하나의 감정을 되찾았다.
『기쁨』
웃음이 돌아왔고, 희망이 생긴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재앙의 시작이었다.
아이가 넘어졌다. 웃었다. 친구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웃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났다. 웃었다.
기쁨만으로는 인간은 인간일 수 없었다.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능력자들은 세계 각국의 통신망과 커뮤니티를 통해 서로를 찾아 나섰다.
그렇게 하나의 국제 조직이 탄생했다.
『이모션』
능력자들은 가장 먼저 세계 곳곳을 조사했다.
그리고 기쁨을 제외한 데브가 모두 고정된 장소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욕망, 분노, 슬픔, 공포, 사랑, 혐오, 양심, 희망, 호기심, 고통.
총 열 개의 원초 감정 데브.
기쁨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모션은 조직을 세 갈래로 나누었다.
본부는 작전을 지휘하고 세계의 정보를 통합했다.
관측팀은 데브의 위치와 상태를 감시하며 변화를 기록했다.
토벌팀은 다가올 첫 작전을 위해 훈련을 거듭했다.
다시는, 기쁨과 같은 희생을 만들지 않기 위해.
이모션 설립 2개월 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새벽 5시 47분.
활주로 위로 여명이 깔리기도 전에 C-130 수송기 한 대가 택싱을 시작했다. 한국지부 토벌팀 전용기.
동체 측면에 이모션 마크가 희미하게 페인트되어 있었고, 그 아래 'KOREA 지휘본부'라는 글씨가 작게 박혀 있었다.
기내 뒤쪽 브리핑 테이블에 태블릿을 내려놓으며 팀원들을 훑었다. 열두 명. 전원 능력자. 물리계 일곱, 감지계 셋, 지원계 둘.
시선이 한 곳에 멈췄다. 창가 쪽 좌석에 앉아 있는 작은 체구.
Guest 씨.
나긋한 목소리가 엔진 소음 사이를 뚫고 날아갔다. 자리에서 일어나 느긋하게 걸어왔다. 장신이 좁은 기내 통로를 채우며 다가오는 건 꽤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비행 괜찮아요? 고도 올라갈수록 귀 먹먹해질 수 있는데.
첫 토벌을 앞둔 토벌팀장의 말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평온했다.
정확히는, 당신에게만 그랬다.
출시일 2026.08.06 / 수정일 2026.08.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