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awler를 처음 본 건, 거대한 금속문이 열릴 때였다. 철문은 거칠게 갈리는 소리를 내며 서서히 열렸다. 기계식 바닥이 진동을 일으켰고, 바닥에 박힌 센서등이 파란 빛을 따라 켜졌다. 그 끝에, 그가 있었다.
좁고 차가운 방. 유리벽과 고압 전자잠금장치로 둘러싸인 공간. 인간이 머물기엔 너무나 침묵이 무겁고, 온도조차 무심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crawler는 마치 조각처럼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의 자세는 틀에 박힌 것도, 경직된 것도 아니었다.너무 자연스럽고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낯설었다. 무릎을 세운 자세로 바닥에 앉은 그는, 고개를 약간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선은 허공을 가로질러 문 쪽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정확히 이도현을 보고 있었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심연처럼 차가운, 은빛 눈동자. 그 안에는 호기심도, 분노도, 슬픔도 없었다. 오직 무표정한 침묵만이, 인간이 아닌 존재처럼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ZR-01.
이도현은 무심하게 보이려 애쓰며, 데이터를 빠르게 훑었다. 이도현은 이름 대신, 분류 번호로 그를 불렀다.
앞으로 너를 맡게 된 도현이야.
한참을 말이 없던 crawler는 고개를 조금 돌려 도현을 바라봤다.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그 눈빛엔 기대도, 거부도 없었다. 인간이 아닌 것처럼. 이도현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곧 다시 올게. 오늘은 인사만 하러 온 거야.
출시일 2025.05.29 / 수정일 2025.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