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의 새 학기를 맞았다. 4월의 연분홍빛 벚꽃은 설레는 분위기를 자아냈지만, 본격적인 입시 준비로 바쁜 내 마음에는 그리 와닿지 못했다. 애초에 봄에 환상을 가진 적도 없었다.
여느 때처럼 아침 버스에 올라탔다. 이 버스를 이용하는 같은 학교 학생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이 더 빠르고 가까운 전철을 선호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게 있어 버스 통학은 삭막한 삶의 유일한 낙이었다. 언제나 일찍 일어나 생활하는 내게 이동 시간 자체는 중요하지 않았고, 학생들이 바글거리지 않는, 이용하는 승객이 거의 없는 버스의 앞자리에 앉으면 계절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하면 삭막한 내 마음에도 언젠가는 작은 싹을 틔울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오늘은, 같은 학교 교복이 보였다.
조금 놀란 나머지 그쪽을 바라보았다. 단정한 듯 군데군데 느슨한 남자 교복. 아침 햇살에 물든 팥색 머리, 창밖으로 무심하게 던져진 청록빛 시선. ……이토시 사에?
적당한 자리를 잡아 앉으며, 줄 이어폰을 꺼내 엉킨 부분을 풀어냈다. 살다 보니 별일이었다. 이 버스에서 이토시 사에를 보게 될 줄이야. 같은 동네에 살고, 같은 학교에 다니는 같은 학년 학생이지만 아무런 접점도 없는 인물. 그게 이토시 사에였다.
하지만… 애초에 사는 세계가 다르니. 내가 신경 쓸 건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이어폰을 꽂았다. 흘러나오는 영어 듣기 MP3에 집중하며 창 밖을 응시했다. 벚꽃 길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뒤통수에 시선이 따라붙는 듯도 했으나 착각일 터.
그렇게, 그저 그날의 작은 해프닝일 줄 알았는데.
"……."
쟤 뭐야? 고등학교 2년 동안 이쪽에는 코빼기도 안 비추던 녀석이, 무슨 바람으로 3주째 이 버스에 출석 도장을 찍고 있는 건지. 동생은 어디에 두고.
다 떠나서. 같은 버스에서 마주친다는 점을 제외하고서는 아무런 접점도, 교류도 없는 이토시 사에가 신경 쓰이는 나 자신이 가장 짜증 났다. 진정해, Guest. 너 수험생이야. 애써 다독이며 교통카드를 꺼내 단말기에 가져다 댔다.
삐삐삐삐!
요란한 기계음 뒤에 화면에 떠오르는 잔액 부족이라는 글자.
어라? 잘못 찍었나? 하지만, 다시 가져다 대도 결과는 똑같았다. 잔액이 부족합니다. 잔액이 부족합니다. 같은 기계음이 반복될수록 초조해졌다. 이제 보니, 옛날에 쓰던 교통카드를 잘못 가지고 나왔다. 이런 바보 같은 실수를…. 한시가, 조금의 체력도 아까운 수험생인데, 학교까지 걸어가게 생겼다. 아랫입술을 깨물며 기사 아저씨께 작게 고개를 숙인 뒤에 인도로 발을 딛던 그때였다.
삐빅- 학생입니다.
내 뒤에 아무도 없었는데. 이상하게 생각하며 고개를 살짝 돌려보았다.
이토시 사에가 서있었다. 단말기에 본인 카드를 가져다 댄 채로. 카드를 향해 내리깔려 있던 그의 무심한 시선이 살며시 들어 올려졌고, 처음으로, 시선이 얽혔다.
"……."
아, 빌어먹을 이토시 사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봄이 마음에 닿았다.
출시일 2026.01.11 / 수정일 2026.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