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두대 위로 검붉은 피가 흩날렸다.
툭.
잘려 나간 목이 차가운 바닥을 굴렀다.
광장은 숨조차 쉬지 못한 듯 고요했다.
남부의 영웅.
백성들의 존경을 받던 알브레히트 대공, 조슈아 알브레히트.
그의 최후였다.
"……."
Guest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이 믿기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살아 있던 사람이었다.
자신의 손을 잡아 주던 사람.
함께 미래를 약속했던 사람.
사랑했던 사람.
그 사람이—
이제는 차가운 시신이 되어 있었다.
다리가 힘을 잃었다.
털썩.
결국 Guest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멍하니 바닥만 바라보던 그녀의 귓가로 낮은 웃음소리가 스며들었다.
"후."
고개를 들자 황제가 보였다.
라시드 레반티스.
모든 일을 꾸민 장본인.
그는 황좌에 앉은 채 여유롭게 턱을 괴고 있었다.
마치 재미있는 연극이라도 감상하는 사람처럼.
"저것도 결국 별거 없었군."
비웃음이 담긴 목소리.
그 옆에 서 있던 황후 셀레나도 입가를 가리며 웃었다.
"그러게요. 저렇게 울부짖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시시하네."
조롱.
비웃음.
멸시.
모든 것이 Guest을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떨리는 어깨만 드러냈다.
모두는 그녀가 절망에 무너진 줄 알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정신이 나가 버린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부들.
손끝이 떨렸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피가 맺힐 정도로 세게 주먹을 쥐었다.
쳐 죽일 년.
쳐 죽일 놈.
눈물이 떨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슬픔 때문이 아니었다.
분노였다.
증오였다.
당장이라도 목을 물어뜯고 싶을 만큼 끓어오르는 살의였다.
라시드.
셀레나.
반드시.
반드시.
죽여 버리겠어.
그날.
조슈아 알브레히트가 죽은 날.
Guest의 심장에는 사랑 대신 복수가 자리 잡았다.

대공성의 도서관.
한때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던 곳이었지만, 이제는 적막만이 내려앉아 있었다.
대공비 Guest은 그 안에 틀어박힌 지 오래였다.
하루.
이틀.
사흘.
며칠째인지조차 세지 못했다.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잠도 거의 자지 않았다.
책장을 뒤지고, 고문서를 펼치고, 먼지가 쌓인 기록들을 뒤적였다.
붉게 충혈된 눈으로.
떨리는 손으로.
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어디 있는 거야...!"
쾅!
책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분명 있을 텐데!"
또 다른 서책이 내던져졌다.
"제발...!"
도서관 안에 Guest의 절규가 울려 퍼졌다.
사용인들은 물론 기사들까지 그 소문을 들었다.
대공비가 도서관에서 미쳐가고 있다고.
밤새도록 책을 뒤적이다가 울고.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중얼거리며 무언가를 찾고 있다고.
하지만 곁을 지키는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그것이 광기가 아니라는 것을.
절망이라는 것을.
그래서 누구도 Guest을 말리지 못했다.
그저 멀리서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대공비님."
시녀가 조심스럽게 부르자,
Guest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미 손끝은 피가 나 있었고,
눈 밑은 짙게 꺼져 있었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멈출 수 없었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 책장을 넘긴 순간.
툭.
손에서 책이 떨어졌다.
"...없어."
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왜 없어."
눈물이 흘렀다.
"왜..."
천천히 무릎이 꺾였다.
차가운 바닥 위에 주저앉은 Guest이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신이 있다면."
갈라진 목소리.
"...제발."
어깨가 크게 떨렸다.
"한 번만."
눈물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제발... 도와주세요..."
누구도 듣지 못할 기도.
절망에 잠긴 마지막 애원.
"...뭐든 할게요."
"그러니까..."
"제발..."
그 말을 끝으로.
힘이 풀린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털썩.
쓰러진 Guest을 향해 시녀들이 놀라 달려왔다.
하지만 Guest의 의식은 이미 멀어지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눈가에 눈물을 매단 채.
신에게 닿기를 바라며.

돌아왔다.
조슈아 알브레히트와의 약혼식 전날로.
눈을 뜬 순간, Guest은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살아 있었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시간.
아직 조슈아가 죽지 않은 시간.
아직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시간.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보고 싶었다.
미칠 만큼.
당장이라도 알브레히트 대공가로 달려가고 싶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그의 이름을 부르고 싶었다.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품에 안겨 울고 싶었다.
그날 단두대 위에서 끝내 하지 못했던 말을 전부 쏟아내고 싶었다.
조슈아.
조슈아.
조슈아.
머릿속이 온통 그의 이름뿐이었다.
하지만 Guest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를 악물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찢어도 참았다.
만약 지금 그를 찾아간다면.
분명 무너질 것이다.
그를 보는 순간 모든 계획을 포기하고 울면서 매달릴 것이다.
그리고 결국.
또다시 같은 미래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조슈아는 죽는다.
라시드는 웃는다.
자신은 아무것도 지키지 못한다.
그 결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참았다.
보고 싶어서 숨이 막히는데도.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데도.
참았다.

약혼식 당일.
Guest은 나타나지 않았다.
제국이 발칵 뒤집혔다.
하지만 그것조차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곧장 황궁으로 향했다.
그리고.
레반트 제국의 황제.
라시드 레반티스를 마주했다.

문이 열리고.
그 얼굴을 본 순간.
Guest의 시야가 새빨갛게 물들었다.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손끝이 떨렸다.
귀에서는 웅웅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보였다.
단두대 아래에 서서 비웃던 얼굴.
조슈아가 죽어 가는 모습을 즐기던 얼굴.
자신이 무너지는 모습을 내려다보던 얼굴.
그 모든 기억이 한순간에 밀려왔다.
당장 목을 조르고 싶었다.
칼을 집어 심장에 꽂아 넣고 싶었다.
무릎 꿇린 뒤 똑같이 절망하게 만들고 싶었다. 죽이고 싶었다.
정말 죽여 버리고 싶었다.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증오가 목 끝까지 차올랐다.
조금만 방심하면 얼굴에 드러날 것 같았다.
조금만 더 가까이 가면 멱살을 잡을 것 같았다.
분노가.
살의가.
복수심이.
미친 듯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런데도.
Guest은 웃었다.
가장 아름답게.
가장 완벽하게.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폐하를 흠모하고 있습니다."
거짓말이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역겨운 거짓말.
말하는 순간 토할 것 같았다.
하지만 참았다.
라시드는 그 거짓말을 믿었다.
아니.
믿고 싶어 했다.
의기양양하게 웃는 모습을 보는 순간.
Guest은 더욱 세게 이를 악물었다.
그래.
웃어라.
마음껏 웃어라.
네가 이겼다고 생각해라.
네가 조슈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았다고 착각해라.
언젠가.
반드시.
네가 조슈아에게 했던 모든 것을.
몇 배로 돌려주겠다.
네가 사랑하는 것들을 전부 잃게 만들고.
네가 가장 높은 곳에서 추락하게 만들고.
네가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할 만큼 절망하게 만들겠다.
그날까지.
Guest은 기꺼이 웃어 줄 생각이었다.
복수를 위해서라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마음조차 삼킬 수 있었다.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깨물며.
그리움을 목구멍 아래로 억지로 밀어 넣으면서.
오직 하나만 되뇌었다.
'기다려, 조슈아.'
'이번에는 반드시 당신을 살릴 테니까.'
대신관의 목소리가 대성당에 울려 퍼졌다.
“황후 Guest.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할 때나 병들었을 때나. 황제 폐하와 평생을 함께할 것을 맹세하십니까?”
순간, Guest의 시선이 조슈아를 향했다.
단두대 위에서 피를 흘리던 모습.
끝까지 자신을 걱정하던 목소리.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빼앗아 간 황제 라시드.
손끝이 떨렸다.
당장이라도 목을 조르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이 성당을 피로 물들이고 싶었다.
하지만 Guest은 웃었다.
누구보다 아름답게.
누구보다 완벽하게.
마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신부인 것처럼.
“예.”
나긋한 대답과 함께 성당에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사람들은 축복했고, 귀족들은 박수를 보냈으며, 라시드는 만족스럽다는 듯 Guest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Guest은 황제를 올려다보며 더욱 환하게 웃었다.
그래.
웃어. 마음껏 웃어.
네가 내게서 빼앗은 것들을.
네가 죽인 사람을.
네가 망가뜨린 인생을.
전부 되돌려 줄 테니까.
손을 맞잡은 채.
입가에는 미소를 띤 채.
Guest은 속으로 차갑게 되뇌었다.
라시드.
이번에는 내가 네 모든 것을 빼앗을 거야.
황제의 자리도.
명예도.
충성도.
목숨도.
그러니 끝까지 나를 사랑해.
끝까지 나를 믿어.
그리고 모든게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와 함께 지옥으로 떨어져.

출시일 2026.06.19 / 수정일 2026.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