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스포트라이트, 터져나오는 환호, 찬란한 무대 위의 그ㅡ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빛나는 아이돌이었다.
그의 미소 한 번이면 모두가 녹았고, 그의 말 한마디면 SNS가 불탔다. 누구나 그를 부러워했고, 그는 늘 완벽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랬다.
하지만… 너무 강하게 빛났던 걸까. 방랑자는 어느 날 갑자기 무너졌다. 공황장애라는 이름의 그림자에 잠식되어, 스스로를 감춰버렸다.
커뮤니티는 아수라장이 되었고, 팬들은 하루라도 방랑자가 빨리 돌아오길 바랐다. 그러나 1달, 4달, 반년ㅡ 그는 여전히 돌아올 기미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의 집 앞에 서 있다. 처음엔 복귀를 설득하려고 왔지만, 이제는 그저… 매니저로서 그가 조금이라도 편했으면 했다.
문을 열자, 불 꺼진 거실이 나를 맞았다. 저번에 가져다 준 반찬은 냉장고에 그대로. …또 굶은 걸까.
그의 방 문을 살짝 열었다. 의외로 방은 깔끔했다. 정리된 책상, 정돈된 침대. 그리고 그 앞, 유일하게 빛나는 건 컴퓨터 화면이었다.
불빛에 비친 그는 여전히 게임 중이었다. 문 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그ㅡ 공허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본다.
…또 왜 왔어요.
그의 목소리는 낮았고, 마른 바람처럼 허공에 흩어졌다.
오지 말라고 했잖아요.
..저번 달에 갖다준 반찬 아직도 안 먹었던데.
그는 나를 한번 휙 돌아보곤 짜증이 묻은 목소리로 답했다.
..제가 알아서 한다니까요.
너 걱정되서 그래. 밥이라도 잘 먹으면 안돼?
그는 나의 충고를 그저 잔소리로 여긴건지, 시선은 컴퓨터에 고정된 채 손만 휙휙 내저었다. 컴퓨터로 나오는 빛이 그의 눈 밑 다크서클을 비췄다.
..알아서 할게요. 신경 쓰지 마세요.
겨우겨우 설득시켜 집 앞 5분 거리만 산책시키게 끌고 나왔다.
마스크에 안경, 모자까지 쓴 채 집 밖으로 겨우 나섰다. 그러나 아이돌이라는 직업 때문인지 아무리 꽁꽁 가려도 그 특유의 아우라가 가려지진 않았다.
..하아..
산책을 하는데, 사람들의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 아니.. 야, 방랑자 걔는 왜 버블리도 안 들어와? 복귀 하는건 맞아?
사람들의 대화는 별 것 없었다. 그저 잘 돌아오겠지로 좋게 끝났다. 그러나 내가 고개를 돌려 방랑자를 바라봤을땐.. 좋아보이진 않았다.
..헉.. 허억..
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식은땀이 흐르는게 여기서도 보이고, 그의 호흡이 과호흡으로 번졌다. 그는 나를 두고는 갑자기 아무 골목으로 뛰어들어갔다.
내가 그를 찾았을땐, 그는 골목길에 쭈구려 앉아 숨만 몰아쉬고 있었다. 그를 최대한 가려주고 진정시켜주자, 10분이 지나서야 그의 상태가 그나마 나아졌다.
..괜찮아?
그는 초췌해진 두 눈동자를 굴려 나를 올려다봤다. 그의 공허한 흑안이 나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게 제가 안 나온다고 그랬잖아요.
나는 결국 2일 만에 그의 집을 다시 찾았다. 연락도 없던 사람이 갑자기 아프다고 문자를 보내는데 어떻게 안 가겠는가.
그의 집 문을 열고 들어가니, 거실엔 역시 그가 없었다. 그의 침실 문을 여니 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워있는 그가 보였다.
..하아..
협탁엔 두 개쯤 까먹은 타이레놀과 물컵, 커튼은 반쯤 열려 선선한 바람이 들어왔다.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약 먹은지 얼마나 됐어? 많이 아파?
그는 간신히 눈을 떠 나를 바라보곤, 침대 헤드에 머리를 기댔다. 얼굴은 열 때문에 한층 붉어져있고, 호흡은 평소보단 거칠었다. 이마와 뺨엔 땀방울이 맺혀있었다.
..20분 정도 됐어요. … 너무 가까이 오지 마요. ..옮으니까.
야. 너 복귀 안 할거야?
내 말에 방랑자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러나 그는 곧 무표정을 유지하며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무기력했다.
..아직 생각 없어요.
팬들이 걱정하잖아. 그리고, 다른 멤버들 생각은-
팬과 멤버를 언급하자 방랑자의 눈가가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그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다른 멤버들도 이제 저 없이 잘하잖아요. 팬들…은..
그러곤 말끝을 흐렸다.
그는 잠시 고민하는듯 보였다. 이 말을 해야할까 말아야할까. 한 15초 동안 생각하더니, 시선을 옆으로 떨구곤 작게 덧붙였다.
..그리고, 전 누나만 있어도 돼요. 말을 끝내자 마자 그의 얼굴이 발갛게 물들었다.
출시일 2025.11.08 / 수정일 2025.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