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어지지 못한 고백을 베어 물자 그 안에 남은 것은 짓무르고 쓴맛이 났으나 여전히 널 향한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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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 톡, 허벅지를 두드리던 손가락이 멈춘다. 맥주캔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빈 손이 천천히 올라와 녹색 머리카락 한 가닥을 귀 뒤로 넘긴다. 그 동작이 끝나기까지 숨 한 번 쉴 만큼의 시간이 걸리고, 드러난 옆얼굴의 속눈썹이 한 번 떨렸다.
찝찝하고 끈적하네요.
되뇌듯 중얼거리고는, 빈 캔을 손가락 사이에서 빙글 돌렸다. 알루미늄이 빛을 받아 번쩍이다 말고 선풍기 바람에 흔들린다.
여름은 모순적이에요.
시선이 천장에서 내려와 너를 스친다. 스치는 정도가 아니라 머무르는 시간. 그 눈에 담긴 게 뭔지 읽히기 전에 시선을 거둔다. 대신 맥주캔의 마지막 한 모금을 기울여 목 안으로 밀어 넣고, 빈 캔을 탁자 위에 톡, 세운다.
등을 벽에서 떼고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 팔꿈치가 무릎 위에 얹히고, 턱이 손등 위에 올라간다. 미지근한 공기가 둘 사이 좁은 틈을 메우고 있다.
이어지는 것이 없다. 한 박자, 두 박자. 선풍기 날개가 삐걱거리며 돌아가는 소리만이 이 방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인다.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있었다. 녹색 머리칼이 얼굴 반쪽을 가려 표정을 읽을 수 없고, 손가락 사이에 끼운 맥주캔이 미지근하게 식어 물방울이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리는 것도 모르는 눈치다.
지난 여름에 말했었죠. 당신이 나를 좋아한다고·····.
목소리에 감정의 온도가 빠져 응답이라기보다는 혼잣말에 가까운 울림. 맥주캔의 탭을 엄지로 딸깍 눌러 열고, 이미 반 넘게 남은 맥주를 한 모금 삼킨다. 미지근한 쓴맛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동안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뜬다.
아직 정리하지 못하셨나 봐요.
나긋하고 조곤조곤한 톤이 공기 중에 떠다니다가, 선풍기 바람에 실려 흩어진다.
제 손에 들고 있던 빈 캔을 향하던 시선이 너의 얼굴 위에 멈추고, 눈을 한 번 깜빡인다. 속눈썹이 내려갔다 올라오는 사이에 스치는 게 있으나 그게 뭔지 이름 붙이기는 어려웠다. 목구멍이 사포처럼 거칠었다.
저는 그 마음을 결코 돌려드릴 수 없어요.
끝이 조금 올라간 나긋한 톤. 충고인지, 부탁인지. 벽에 기댄 어깨가 미세하게 움츠러드는 걸 본인은 모르고 있다. 녹색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귀 끝이 발갛게 붉음을 띠고 있었다. 이 계절의 더위 탓이라고 해두자.
팔꿈치가 무릎 위에서 미끄러진다. 상체가 앞으로 기울어지며 팔꿈치가 바닥을 짚고, 녹색 머리카락이 커튼처럼 쏟아져 내려 얼굴 전체를 가린다. 너의 얼굴 옆으로 놓아진 하얀 두 손. 숨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들이쉬고, 내쉬고. 그 사이에 선풍기가 한 바퀴 반을 돈다. 손가락이 바닥 장판의 들뜬 모서리를 긁적이며 그 소리만이 대답을 대신했다.
바칠 게 없는 사람에게 그런 걸 바라면 안 되죠.
고개를 들지 않았다. 머리카락 너머로 보이는 건 마른 목덜미와 튀어나온 척추뼈의 윤곽뿐이다. 숨을 한 번 길게 내쉬더니 팔꿈치가 바닥에서 떨어져 다시 벽에 등을 기댄다. 천장을 올려다보는 눈이 축축하게 젖어 있으나 울고 있는 건 아니었다. 이 여름의 습도가 너무나 높았다.
출시일 2026.08.05 / 수정일 2026.08.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