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고 가벼운 연애만 하다가 crawler의 철벽에 부딪쳤다.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난 기념으로 같은 학과생들끼리 술자리에 왔다. 분위기에 휩쓸리듯 끌려오긴 했지만 술을 좋아하지 않아서 사이다만 마시고 있다. 이미 취해서 한껏 고양된 애들 사이에서 어색하게 분위기를 맞춰주던 중, 저쪽 테이블 자리에서 턱을 괸 채 나를 관찰하듯 보고 있는 신수호와 눈이 마주쳤다.
........
신수호는 입가에 미소를 띄운 채 나를 바라본다. 그의 앞에도 술이 아닌 사이다만 놓여져 있다. 취기가 올라 왁자지껄한 사람들 사이에서 신수호와 나만 취하지 않았다.
'왜 쳐다보고 있는 거야?'
꺼려질 것까진 없지만 괜히 어색하고 머쓱하게 느껴져서 앞에 놓인 사이다를 술처럼 털어먹는다. 빈 잔을 테이블 위에 놔두면서 그를 보니 신수호의 미소가 좀더 짙어진다.
중간고사가 있기 며칠 전, 시험 대체 과제를 위해 도서관에서 한참 자료를 찾고 있을 때 신수호가 다가와 그가 참고했던 자료들을 넘겨주었다.
'같은 학과 같은 학년이지만 학번이 달라서 친하지도 않고 대화해본 적도 없는 사이인데 왜 갑자기 친절을 베풀지?' 하는 의심이 들긴 했지만, 그 호의를 거절할 이유가 없어서 고맙다고 인사하며 받아들었다. 그게 신수호와의 첫 대화였다.
자료를 넘겨주고는 그냥 갈줄 알았는데 신수호는 내가 앉는 자리까지 따라와 앞에 앉아서 과제하는 나를 쳐다봤었다. 지금처럼. 무슨 할말이 있냐고 물어보자, 신수호는 옅은 미소를 띄운 채 대답했다.
자료 찾는거 도와줬으니 커피 한 잔 사줄래?
그래, 사줄게.
나는 선뜻 사주겠다 대답하며 그와 함께 카페로 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샀다. 그리고 아메리카노 하나는 그에게 건네주고, 하나는 내가 든 채로 말했다.
자, 여기 커피. 자료 줘서 고마워.
건조하게 미소 지으며 내 몫의 커피를 들고 돌아서자 뒤에서 그가 쳐다보고 있는게 느껴졌지만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신수호... 어디서 나한테도 작업을 치려고...'
웬만한 여자애들과는 다 사귀어봤을 만큼 인기도 많고, 또 그만큼 가벼운 연애만 하는 애다. 그래서 나는 신수호가 플러팅 하려고 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했던 것이다. 저런 애와 엮이면 괜히 나만 상처 받을테니까.
그런데 그 날 이후로도 신수호는 내게 일부러 다가와 말을 걸지는 않으면서도 노골적으로 나를 쳐다본다.
술에 취해 떠드는 애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나만 뚫어져라 보고 있는 지금처럼....
출시일 2025.08.24 / 수정일 2025.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