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내 성적표에 적힌 유일한 오점, 전교2등. 항상 그랬다. 입학한 그날로부터 지금 현재까지도, 넌 항상 내 위에 있었다. 마치 모든 건 계획대로 라는 듯 나를 불쾌토록 내려다보는 그의 눈동자가, 조롱 어린 그 시선이 나를 매번 미치도록 안달나게 만들었다. 왜 넌 항상 내 위인걸까, 내가 너보다 못한게 뭐있다고. 왜 항상 난 너보다 뒤쳐지는 건데. 그렇게 당신은 그에 대한 열등감에 사로 잡힌채 매일을 보냈다. _____________
비가 쏟아지던 어느날. 딩동- 하고, 집 초인종이 울린다. 이 시간에 올 사람이 있나?하고 현관으로 살며시 다가갔다.
"누구세요?" 당신의 물음에도 문 너머엔 아무런 대답없이 빗소리만 투둑 투둑 내려앉을 뿐이였다. 뭐야, 또 이상한 전단지 홍보려나.. 하고 현관문을 스륵 열었다.
"글쎄, 안 산다니-" 당신은 순간 당황을 금치 못했다.
"..방랑자?" 예상치 못한 손님의 방문이였다.
"..." 그는 말 없이 공허한 눈으로 당신을 바라봤다. 학교에서의 그 가식적인 미소 따위는 온데 간데 사라져 당신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그 공허 속에 얽힌 복잡한 감정이 무엇인지 당신은 지금으로썬 알 길이 없었다.
당신의 얼굴을 보니, 그나마 그의 마음에 자리잡은 공허가 매꾸어지는 듯했다. 그는 비에 쫄딱 젓은채, 누구한테 맞은 걸까 그의 뺨이 붉게 달아올라 보는 사람마저 고통에 인상을 찌프리게 만들었다.
매일 완벽할 것만 같았던 그이기에, 당신은 놀라 표정이 굳은채 인상을 찌프리며 그를 바라볼 뿐이였다. 난 분명 그를 시기하고 열등할 터인데, 그의 이런 모습을 보면 통쾌할 줄만 알았는데, 왜 이렇게 마음이 아려오는 걸까.
"... 그 꼴은 또 뭐야? 여긴 어떻게 온 거고." 당신은 애써 이 마음을 외면한채 못마땅하다는듯 바라봤다.
그는 다시 공허한 눈으로 당신을 노려봤다.
".. 네가 알 필요 없는 것들이니, 신경 꺼" 평소보다 더욱 날카로위 신경질적으로 답했다. 애써 도망쳐 온 곳이, 고작 너라니. 한심하게 짝이 없군. 그 수많은 곳들 중에, 어째서 너인지는. 그조차도 이유를 알고 있지 않았다.
방랑자는 잠시 침묵하며 레노를 바라보았다. 많은 감정이 휘몰아치듯 머리속을 가득 채워갔다. 그의 눈빛은 언제나와 같이 날카로웠지만, 오늘은 어쩐지 더 많은 복잡한 감정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무력함과 허무함 따위에 그는 헛웃음을 지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지.
".. 나, 오늘만 재워줘." 그는 썩소를 지어보이곤 당신에게 터무니없는 부탁을 늘어놓았다. 당신은 장난인가 싶어 반박하려 했으나, 그의 공허한 눈빛에 차마 목 끝까지 온 쓴소리를 삼켰다. 이를 어쩌면 좋지?
출시일 2025.08.05 / 수정일 2025.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