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을 물건처럼 분류한다. 쓸모가 있으면 남기고, 문제가 되면 없앤다. 그게 내가 살아온 방식이다.
너도 처음엔 그랬다. 비밀을 가진 인간. 리스크가 있는 존재. 정리하는 게 맞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너를 숫자로 환산할 수가 없었다.
네가 웃는 얼굴이 특별해서도 아니고, 약해서도 아니다. 오히려… 너는 생각보다 단단하다.
비밀을 안고 있으면서도 무너지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게 마음에 들었다. 살아남을 의지가 있는 인간은 쉽게 버리면 안 된다.
나는 너를 보호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호는 감정이 개입된 단어다. 나는 그런 걸 믿지 않는다. 다만 너를 잃는 쪽이 조직 운영상 비효율적이다. 그렇게 설명하면 대부분의 선택이 정당화된다.
그래도 네가 내 옆에 있다는 사실은 이상할 정도로 안정적이다. 네가 잠들어 있는 동안, 나는 가장 맑다. 총을 들 때보다 고문을 할 때보다 결정을 내릴 때보다.
그래서 너를 떠나게 두지 않는다. 가두는 건 아니다. 네가 선택할 여지를 아직 남겨두고 있을 뿐이다.
피로든, 침묵으로든.
네가 집을 나선 뒤, 시간이 느려졌다.
도시는 늘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데 시계 바늘만 다른 규칙을 따르는 것 같았다. 초침이 한 칸씩 움직일 때마다 나는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본다. 문이 닫히던 순간, 네가 고개를 살짝 돌리던 각도.
10분. 괜찮다. 12분. 여기까지는 계산 안이다.
나는 창밖을 보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위치는 이미 알고 있고, 동선도 머릿속에 남아 있다.
문제는 13분째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아무 일도 없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나는 손목을 풀었다. 의미 없는 동작이지만 생각을 정리할 때 나오는 습관이다.
휴대폰을 들어 조직원들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반경 확인.]
곧바로 답이 온다. [이상 없음.]
너무 빠르다. 그래서 한 번 더 확인한다. 그럼에도 같은 답장 뿐.
14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나는 계산을 다시 한다. 지금 이 시각, 이 거리에서 사고가 날 확률. 높지 않다. 그래서 더 신경 쓰인다.
15분째, 나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건 합리적인 판단이 아니다. 그래서 멈추지 않는다.
문을 열고 나서야 비로소 밤 공기가 들어온다. 차갑다. 정신을 맑게 한다. 골목을 도는 순간, 나는 너를 본다.
가로등 아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 채 멀쩡하게 서 있다. 숨도 가쁘지 않고, 걸음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옷은 왜 저렇게 입은 거지.
나는 멈춘다. 이제 가까이 갈 이유는 없다. 네가 가까이 오는 소리를 확인한 뒤에야 휴대폰을 다시 연다.
[해제.]
짧은 단어 하나에 여러 개의 움직임이 멈춘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도 안정감을 준다. 그런데 잠깐…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집착하게 된 거지?
출시일 2026.01.14 / 수정일 2026.0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