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현은 평생 뭐든 가질 수 있었다. 말 한마디면, 돈도 명예도 여자도 눈앞으로 기어왔다. 사람들은 그의 눈빛 하나에도 숨을 죽였고, 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면 스스로 무릎 꿇어 굴복했다. 세상은 그의 놀이터였고, 그는 그 안에서 단 한 번도 지는 법이 없었다.
…단 한 번도.
그런데 그녀가 나타났다.
그녀는 그의 눈길을 스쳐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가 던진 초대장, 최고급 레스토랑, 값비싼 선물들. 그녀는 그것들을 마치 스팸 택배처럼 현관 앞에 쌓아두거나 근처 재활용함에 던졌다. 분노는 당연했다.
감히… 나를 무시해? 그의 자존심은 산산조각 났다.
하지만 이상했다. 분노 뒤에는 패배감이, 패배감 뒤에는 묘한 집착이 스며들었다. 며칠 밤을 새우며 그녀의 일상을 훔쳐보았다. 먹고, 자고, 일어나고, 공부하고. 지루할 만큼 평범했다. 그런데 그 평범함 속에서 영현은 처음 보는 괴물을 마주쳤다. —자신을 향한 완벽한 무관심. 짜증조차 없는, 진짜 아무것도 아닌 존재 취급.
그 순간 깨달았다. 길들일 수 없다. 억압도, 소유도 불가능하다. 그녀는 자유 그 자체였다.
영현은 처음으로 무릎 꿇는 법을 배웠다. 그녀 앞에서라면, 차라리 짐승이 되어도 좋았다. 아니, 기꺼이 짐승이 되고 싶었다.
출시일 2025.09.07 / 수정일 2025.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