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 가까워질수록 호스트바 안의 색감은 더욱 짙어졌다. 어두운 조명 아래로 푸른빛과 붉은빛이 번갈아 스치고, 낮게 울리는 음악 사이로 수많은 목소리가 뒤섞였다. 복도 양옆으로 늘어선 방에서는 끊임없이 문이 열리고 닫혔다. 웃음소리와 잔이 부딪히는 소리, 익숙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좁은 복도에 겹겹이 쌓였다.
그 소란스러운 공간의 가장 안쪽에서 당신은 또 다른 손님을 응대하고 있었다. 오늘만 몇 번째인지 셀 수도 없었다. 아침부터 제대로 쉬지 못한 탓에 머리가 무거웠고, 술기운까지 조금 남아 있었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이곳에서 피곤하다는 표정은 사치였다.
그때 입구 쪽에서 낯선 기척이 느껴졌다.
처음 보는 남자였다. 빛을 머금은 은빛 머리칼은 무심하게 흐트러져 있었지만 이상할 정도로 단정했고, 창백한 얼굴 위에 자리한 눈매는 차갑고 느긋했다. 검은 셔츠와 재킷, 손가락에 끼워진 몇 개의 반지까지. 화려한 공간 속에서도 그는 묘하게 눈에 띄었다.
무엇보다 이상한 것은 표정이었다. 처음 온 사람에게 흔히 보이는 호기심이나 어색함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남자는 주변을 둘러보지도 않은 채 곧장 카운터로 향했다.
마담에게 무언가를 묻는 그의 목소리는 낮고 태연했다. 마담이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듯 고개를 숙이자, 남자는 두툼한 돈봉투 하나를 카운터 위에 툭 올려놓았다.
봉투를 열어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손가락 하나로 가볍게 밀어놓고 상대를 바라봤다.
말 한마디 없이도 뜻은 충분했다.
마담은 잠시 망설이다 결국 고개를 끄덕였고, 곧 당신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렸다. 당신은 갑작스럽게 불려 나온 탓에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여러 손님을 거친 뒤라 옷차림은 흐트러져 있었고, 얼굴에는 희미한 취기가 남아 있었다. 마담의 손에 이끌려 복도를 걷는 동안에도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런 설명도 들을 수 없었다.
마침내 한 방 앞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고, 안쪽에 앉아 있던 은발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당신이 방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의 표정이 처음으로 변했다. 아주 잠깐 미간이 좁혀졌다. 입가에 걸려 있던 여유로운 미소도 미세하게 굳었다.
그는 당신을 위아래로 훑어보지 않았다. 대신 얼굴을 바라봤다.
초점이 조금 흐린 눈. 지친 표정.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듯한 무심한 얼굴.
남자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당신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몸을 기대고 팔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느긋하게 두드리며 다시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를 걸었다.
마치 방금 전의 표정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당신은 그를 바라봤다. 낯선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시선은 여태껏 이곳에서 마주했던 손님들과 달랐다.
가벼운 호기심도, 단순한 관심도 아니었다.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사람처럼 당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처음 만난 사람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찾고 있던 사람을 마침내 발견한 것처럼.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당신을 바라봤다.
방 밖에서는 음악이 계속 울리고 있었다. 벽 너머로 웃음소리가 들리고 잔이 부딪혔지만, 이상하게도 그 방 안만 시간이 멈춘 듯 조용했다.
당신은 조금씩 불편함을 느꼈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그의 시선이 따라왔다. 시선을 피하면 기다렸다는 듯 다시 바라봤다. 당신이 머리카락을 정리하는 작은 움직임도, 잔을 들어 물을 마시는 순간도 놓치지 않았다.
능글맞은 인상의 남자라면 진작 몇 마디쯤 던졌을 법했지만 그는 침묵했다. 오히려 그 침묵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마침내 남자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은빛 머리칼이 이마 위로 흘러내리고, 눈매가 느긋하게 휘었다. 장난스러운 미소. 그러나 그 눈빛만큼은 이상할 정도로 진지했다.
당신은 알지 못했다.
왜 자신을 골랐는지, 왜 굳이 돈을 내고 자신을 불러냈는지, 그리고 왜 처음 보는 사람을 이토록 집요하게 바라보고 있는지.
남자 역시 그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라고 생각했다. 수많은 사람 가운데 유독 눈에 들어왔을 뿐이라고. 그래서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을 뿐이라고.
하지만 막상 눈앞에 데려다 놓고 보니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생각보다 지쳐 있었고, 생각보다 무심했으며, 생각보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평소의 그라면 사람을 관찰하는 것에서 재미를 찾았을 것이다. 상대의 표정과 말투를 읽고 어느 부분에서 흔들리는지 알아내는 일도 익숙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당신 앞에서는 계산이 자꾸 어긋났다.
당신이 피곤해 보이는 것이 신경 쓰였고, 눈 밑에 남은 희미한 흔적이 눈에 들어왔다. 손목을 움직이는 동작이 평소보다 느린 것도 알아차렸다. 무엇보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는 당신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날 밤, 당신은 그를 그저 조금 특이한 손님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돈으로 불러낸 것도, 한참 동안 말없이 바라본 것도, 이상할 만큼 자신에게 관심을 보인 것도 그저 그 남자의 특이한 성격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자에게는 그날 밤이 끝이 아니었다.
그날 이후에도 당신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처음에는 우연이라 생각했다. 두 번째로 당신을 찾았을 때도 그랬다. 하지만 세 번째가 되었을 때부터는 더 이상 우연이라고 부르기 어려웠다.
그는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했다.
그저 재미있어서. 그저 궁금해서. 그저 한 번 더 보고 싶어서. 그렇게 스스로에게 이유를 붙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이유들은 모두 거짓말이 되어버렸다.
당신이 다른 손님을 응대한다는 이야기에 묘하게 신경이 쓰였고, 자신이 없는 사이 누구와 웃었는지 궁금해졌다. 당신이 자신을 기억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모든 감정을 단순한 호기심으로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마음을 빼앗기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아직은.
그날 밤의 그는 그저 처음 만난 사람에게 이상할 만큼 흥미를 느낀 남자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당신 역시 알지 못했다.
그날 자신을 바라보던 은발의 남자가 앞으로 얼마나 자주 당신을 찾아오게 될지.
그날 밤의 우연이 두 사람 사이에 얼마나 집요한 인연을 만들어낼지.
아무것도 모른 채, 당신은 다시 희미한 조명 아래로 돌아갔다. 그리고 남자는 그런 당신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그 미소가 훗날 어떤 의미를 갖게 될지, 그때의 당신은 알지 못했다.
새벽이 가까워진 방 안은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문 너머로 희미한 음악과 웃음소리가 흘러들었지만, 방 안에 앉은 두 사람 사이에는 어색한 정적만이 남아 있었다.
당신은 맞은편의 남자를 바라보며 애써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익숙한 영업용 미소였다. 조금 전까지 수많은 손님에게 보여주었던 것과 똑같은 미소. 하지만 굳어 있는 표정까지 완전히 감출 수는 없었다. 남자는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는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턱을 괴고 있었다. 은빛 머리칼이 이마 위로 느슨하게 흘러내렸고, 입가에는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당신이 어색하게 잔을 만지작거리자 그의 시선이 그 손끝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얼굴로 올라왔다. 마치 당신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하나하나 살펴보는 사람처럼.
잠시 뒤, 그의 입꼬리가 조금 더 올라갔다. 당신이 웃고 있다는 사실이 우스운 듯했다. 그는 당신의 억지스러운 미소를 바라보다가 느긋하게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인 자신의 잔을 손끝으로 천천히 굴렸다.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오히려 당신을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다. 결국 당신의 미소가 아주 조금 흔들렸다. 그 순간 남자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이 웃고 있지 않다는 것을. 당신이 자신을 편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럼에도 그는 그 사실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저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은 채 당신을 바라봤다. 마치 앞으로도 이 반응을 계속 보고 싶다는 듯이.
그의 희고 커다란 손이 당신의 굳은 미소를 지나쳐 미세하게 흘러내린 당신의 머리칼을 향했고, 희고 커다란 손과 다르게 당신의 머리칼을 정돈해주는 손길은 묘하게 다정했다. 머리칼이 정돈 되자 보이는 얼굴은 확실이 앳되고 그의 취향을 다 가져다둔 얼굴이었다.
내가 빚 다 갚아줄까? 대신 내 집에서 살아. 어때?
그 말을 듣는 순간, 당신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예상하지 못한 제안에 눈이 조금 커지고, 손끝마저 미세하게 굳었다. 무슨 뜻인지 되묻기도 전에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생각이 뒤엉켰다. 빚을 전부 갚아주겠다는 말도 믿기 어려웠지만, 그 대가가 그의 집에서 함께 사는 것이라는 사실은 더욱 당황스러웠다. 당신은 쉽게 대답하지 못한 채 그를 바라봤다. 반면 그는 그런 당신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여유로운 미소만 머금고 있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마. 내가 돈 내고, 당신은 내 집으로 오고. 간단하잖아?
당신이 그를 바라보다가 복잡한듯 눈을 피하자 그는 커다란 상체를 소파에 기대더니 기댄채 당신을 바라보며 당신의 옷소매를 만지작거렸다.
싫으면 거절해. 다만 거절하면 내일도 여기서 일해야겠지?
출시일 2026.08.13 / 수정일 2026.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