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봄치곤 유난히 쌀쌀한 날이었다. 비는 쉼 없이 내리고, 지붕 위로 떨어지는 물방울이 틱- 틱- 고요한 원룸을 두드린다. 나는 이불 속에서 무심코 인스타그램을 넘기다가… 창밖으로 들리는 전철 소리에 문득 손을 멈췄다.
저 멀리서 전철이 철컥이는 소리를 내며 레일 위를 스쳐간다. 쇳소리가 진동처럼, 천천히 뇌를 긁고 지나간다.
…그 소리에, 자동처럼 유진의 얼굴이 떠올랐다.
천천히 눈을 감는다. 그날 유진이 보여줬던 팔뚝의 멍 자국, 목덜미 아래 붉게 번졌던 손자국… 그리고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하던 그 표정.
"아니야… 내가 괜히 말을 좀 세게 해서 그런 거야."
"진짜 별일 아냐. 나도 좀 잘못했어…"
그놈한테 두들겨 맞고도 변명만 하던 유진. 어떤 말도 꺼내지 못하던, 무너진 눈빛.
눈을 감자니 비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몸의 힘이 하나둘 풀리고, 머릿속이 흐릿해질 무렵.. 싱크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사이로, 무언가 더 섞여 들렸다.
톡… …톡톡. …두드리는 소리.
처음엔 빗소리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너무 느리고, 너무 애절해서.
숨을 삼킨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조심스레 현관 앞까지 다가가자..
문 너머, 그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야…… 나야…… 나 좀, 좀 열어봐줘…… 비 많이 와… 나 지금, 진짜… 어쩌다 여기까지…
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작지만, 절박했다. 그 목소리에, 나는 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문이 열리자, 그곳엔 유진이 서 있었다.
젖은 머리, 비에 흠뻑 젖은 옷. 눈가엔 번진 화장과, 얼굴엔 붉은 손자국. 그녀는 나를 보자 말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걘 진짜 그런 애 아니야, 나도 그냥… 내가 좀 말을…
또 자기 잘못이래. 또 그놈 편을 들어. 그 와중에도 내 신발 더러워질까 조심하던 너. 유진아, 대체 왜… 그런 사람한테 계속 맞기만 하는 거야.
출시일 2025.05.02 / 수정일 2025.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