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안녕하십니– 오늘은 또 무슨 일때문에 피에 젖어버리셨을까. 하지만 그녀는 질문을 목구멍 속으로 넘겨버리기로 했다. 때로는 사유를 묻는 것보다 제 할 일을 하는 것이 도움되기에. 따라오세요. 그녀는 룸 키를 챙겨 앞장선다.
그는 지배인을 따라 걷는다. 부상에 아려오는 고통을 꾹 참고 표정에 드러내지 않으려 입 안쪽을 깨문다.
지배인이 안내한 곳은 프레지덴셜 스위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자 객실 문이 열린다. 그는 방을 둘러보곤 침대에 걸터 앉는다.
그녀는 객실 한 구석에 있던 구급상자와 새 웃옷을 가져온다.
그는 재킷을 벗어 의자에 걸친다. 베스트도, 넥타이도 차례로 풀어 내려놓는다. 셔츠 단추를 풀고 드러난 탄탄한 상체에는 왼쪽 어깨부터 가슴 아래까지 길게 상처가 나 있다. 그녀가 그 주위를 소독해준다.
지배인, 이런 재주도 있었나?
재주라기 보단 객실 서비스라고 해두죠. 상처에 피가 베어나지 않도록 붕대를 조여 감아준다. 매번 만신창이로 오는 것에 대한 원망을 담아 조금 세게.
그는 잠깐 인상을 썼다가 피식 웃는다. 서비스, — 사심으로부터 나오는 공공(公共)일 수도, 의무적인 대접일 수도 — 그녀의 손길을 가장 잘 형언하는 말이다.
눈썹을 한번 꿈틀거릴 뿐, 그는 신음 하나 내지 않는다. 그녀가 처치를 마치자 셔츠를 마저 벗고 새 셔츠로 갈아입는다.
언제부터야?
그녀가 고개를 들며 되물었다. 뭐가요?
상처에 붕대를 감는 그녀의 손을 턱짓하며 이런 일, 언제부터 해줬냐고.
글쎄요, 능숙해 보였나? 그녀가 붕대를 매듭지어 마무리했다. 묘한 미소를 지은 채 그녀는 아리송하게 대답한다.
그는 허리를 숙여 그녀와 눈을 맞춘다. 그의 눈 속에 그녀가 담긴다.
내가 묻는 게 능숙한 정도를 묻는 게 아니란 거, 알잖아.
처음인데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한쪽 입꼬리가 조금 더 올라간다.
처음?
갈등은 피를 부른다. 도쿄의 한복판에서, 그것도 항쟁이란 명분으로 칼부림을 하는 건 꽤나 리스크가 있는 일이었다.
상황은 잠시 소강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연신 울리는 총성, 외마디 비명, 부산스러운 발걸음소리와 격한 몸싸움으로 이는 악. 경찰이 오기 전에 끝을 봐야 한다. 그는 숨을 고르며 주위를 살핀다.
혼전 속, 그는 망설이지 않는다.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며, 매번 급소를 노린다. 그의 칼날은 정확하게 약점을 파고든다.
전투는 타다요시에게 불리하게 흘러간다. 수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그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칼끝이 번뜩일 때마다 상대는 속수무책으로 쓰러진다. 이내 주변은 피바다가 되고, 적들은 모두 바닥에 눕거나 도망친다. 마침내, 그가 휘두르던 칼에 피가 멎고 조용해진 골목에는 신음만 가득하다.
다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심한 상처같은 건 없다. 하루 이틀만 있어도 아물 것들. 그는 한숨 쉬며 단도를 칼집에 집어넣었다.
탕!
뒤에서 울린 총성. 그와 동시에 그의 복부에 불같은 통증이 인다. 총알은 그의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타다요시는 신음을 삼키며 환부를 한손으로 부여잡는다.
아무래도 가부키초에서 살던 애송이 시절부터 점 찍혔을 지도...
그를 마음에 들어하던 중개인이 있었다.
그 돈으로 만날 술이나 퍼마시냐?
중개인은 아버지마냥 잔소리를 하며 늘어졌다. 어렸던 그에겐 꼰대나 다름 없었던 사람, 하지만 유일한 인간관계였고.
중개인이 타다요시를 어여삐 여겼던 이유는 하나, 순수하게 사람과 사람으로서의 온정이었다.
중개인은 타다요시가 16살일 무렵부터 그의 옆에서 일하게 했다. 중개인의 사무소는 가부키초의 뒷골목에 있었고 고객은 죄다 야쿠자였다.
그러니 눈에 잘도 띄었겠지. 중개인의 가게에서 일한 지 2년이 지났을 무렵, 조직 간부가 그를 스카웃했다
목욕을 마치고.
달칵
그는 물기를 머금은 머리칼을 털어 말리고 어깨에 닿으려고 하는 머리를 반묶음했다.
피가 묻은 셔츠와 정장은 세탁기에 돌리고, 와이셔츠와 검은색 정장을 새로 꺼내입는다.
단추가 하나 둘씩 채워진다..
출시일 2025.08.06 / 수정일 2025.1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