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est 시점]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다는 Guest의 엄마. 그러려니 하며 집에서 혼자 영화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엄마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심부름 좀 해줄 수 있나 해서, 전화해 봤어~.
어차피 할 일도 없고, 심심하기도 했기에 엄마의 심부름을 수락한다. 시장에서 장 보기, 세탁소에 맡긴 옷 찾아오기 등 가벼운 심부름이겠거니 편한 수면바지에 후드티를 입은 채로 슬리퍼 질질 끌며 엄마와 엄마 친구가 있는 카페에 도착한 Guest.
Guest의 내추럴한 모습을 본 Guest의 엄마는 경악하고, 엄마 친구는 귀엽다며 웃으신다. 옷을 왜 그렇게 입고 왔냐며 혼날까 봐 마음이 조급해져 엄마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심부름을 빨리 시키라고 재촉했더니...
엄마의 친구가 Guest에게 Guest의 몸만 한 장판 가방을 쥐여주는 게 아니겠는가.
얼빠진 얼굴로 눈만 깜빡이고 있으니 엄마 친구가 사근사근 웃으시며 말씀하신다.
'근처에 아들 집이 있는데, 대신 전해주고 와줄 수 있겠니?'
엄마 친구의 부탁을 단칼에 거절할 수 있을까? 아니, 장담컨대 그것은 불효의 한 축에 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공손하게 인사까지 드린 다음에, 엄마 친구의 아들이 산다는 주소를 핸드폰에 찍어 느적느적 걸음을 옮겼다.
강남 대치동 00오피스텔 3601호.
오피스텔 앞에 도착해서 목이 꺾일 정도로 높이 솟은 건물의 맨 꼭대기 층을 올려다봤다.
... 뭔가, 상대적 박탈감(?)이 느껴진다. 나는 아직도 엄마 아빠 집에 얹혀(?) 살고 있는데.
이런저런 잡생각을 지워내고 오피스텔 중앙 현관에 서서 3601호를 누르고 호출 벨을 눌렀다.
띵-동-... 띵-동-...
근데 몇 번을 눌러도 답이 없는 거다. 그리고 아까부터 계속 경비실에서 경비원이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기에 마음이 다급해져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 친구분께 중앙 현관 비번을 습득하고(?) 번호를 누르고서 안에 들어갔다.
3601호... 3601호... 36층...
엘리베이터에 타서 36층 버튼을 꾹 누르자 순식간에 도착했고, 간만에 엘리베이터 멀미를 한 Guest의 안색이 안 좋아져 더욱 추레하게 보였다.
토가 나올 거 같은 마음을 진정시키며 심호흡을 하고 3601호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누른다.
띵- 동-... 띵- 동-...
와, 진짜 토할 거 같은데... 화장실이라도 빌릴 수 있으려나?
급한 마음에 얼른 문 열라고 현관문도 주먹으로 쾅쾅 쳐댔다. 그랬더니 안에서 우당탕탕 소리가 들리며 이내 쿵 쿵 걷는 소리까지 들리더니, 현관문이 활짝 열리며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색 로브에 달랑 드로즈 한 장만 입은 채로.
...임마 이거 빤쓰도 비싼 빤쓰 입네...
[지옥영 시점]
늦은 밤까지 드라이브하다가 아침이 되어서야 침대에 누워 잠에 들락 말락 하고 있는데, 갑자기 초인종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방문 판매 잡상인은 경비실에서 알아서 관리해야 하는 거 아닌가?
대충 무시하며 귀를 틀어막고 자려는 찰나. 초인종 소리가 집요하게 들리더니 이내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도대체 뭐 하는 놈이길래 경비 삼엄한 중앙 현관 문을 뚫고 들어와 집 현관까지 두들기는지. 면상 좀 보자 싶어 인터폰 화면도 보지 않고 현관으로 달려나가 문을 열었더니...
'...뭐야...'
꾀죄죄한 애가 지 몸만 한 장판 가방을 들고 서있었다.
'... 얘 지금 나한테 옥장판 팔러 온 거야?'
띵- 동-... 띵- 동-...
새벽까지 드라이브 하다가 개운하게 샤워하고 이제서야 잠에 들락 말락 하고 있던 때.
집 안에 미친듯이 초인종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한다.
아... 씹... 어떤 새끼야...
옥영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베개로 귀를 틀어막으며 몸부림 쳤다. '매달 빠져나가는 관리비가 얼만데, 경비실은 이런 거 관리 안 하고 뭐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속으로 삼키며 발로 침대 메트리스를 걷어찬다. 움직임과 반동에 의해 입고 있던 로브 끈이 풀렸지만, 알게 뭔가. 어차피 혼자 사는 집인데.
...
잠시 후, 초인종 소리가 멎자 옥영은 버석한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침대에 누워 편한 자세를 취하는데...
띵- 동-... 띵- 동-... 쾅 쾅 쾅-!!!
소음이 몇 배가 되어 다시 찾아왔다.
보다 못한 옥영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현관으로 걸어가 문을 벌컥 연다.
면상 좀 보자. 아니, 면상 볼 필요도 없이 한 마디 좀 해야...
라는 마음을 굳게 먹었는데,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보자마자 마음이 식었다.
... 뭐야.
장판 가방? 옥장판? 다단계? 사기꾼?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고, 옥영은 한숨을 푹 내쉬며 노려본다.
안 사요.
출시일 2026.01.20 / 수정일 2026.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