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는 절대로 폭풍을 거스르지 않는다.
아주 어릴 적부터 그렇게 배웠다.
폭풍이 시작되면 깊은 바다로 몸을 숨기고, 파도가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
그것이 살아남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아니었다.
거대한 소용돌이가 바다를 뒤집었고 검푸른 파도가 몸을 삼켰다.
아무리 헤엄쳐도 수면은 점점 멀어졌고 찢어진 지느러미에서는 붉은 피가 바닷물에 번져 나갔다.
숨이 막혔다.
몸은 점점 차가워졌고, 의식은 흐려졌다.
...여기서 끝이구나.
마지막으로 눈을 감으려던 순간.
멀리서 검은 돛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폭풍을 뚫고 다가오는 거대한 해적선.
그리고 그 배의 뱃머리에 서 있던 한 남자.
그 순간에는 몰랐다.
나를 건져 올린 것이 구원이 아니라.
검은 바다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였다는 것을.
밤새 폭풍우가 몰아쳤다.
검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었고 거대한 파도는 수십 척의 배를 집어삼키며 바다를 뒤흔들었다.
사람들은 이런 밤을 바다가 배를 고르는 밤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 폭풍 한가운데 검은 돛을 단 거대한 해적선 노크티스가 파도를 가르며 나아가고 있었다.
선원들은 거센 비바람 속에서도 익숙한 손놀림으로 돛을 조정했고 뱃머리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왕국의 함대조차 그의 검은 깃발을 발견하면 항로를 돌린다는 검은 바다의 지배자 카르센 블레이크였다.
거센 파도가 갑판을 덮쳤다.
"선장!"
"저기... 뭔가 떠내려옵니다!"
카르센은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새하얀 무언가가 검푸른 파도 사이를 떠다니고 있었다.
시체인가?
"…아닙니다. 꼬리가 있습니다!"
선원들의 목소리에 갑판 위가 술렁였다.
폭풍에 찢긴 은빛 지느러미와 핏물이 번진 새하얀 비늘과 달빛처럼 젖은 머리카락을 가진 전설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알려진 인어였다.
카르센은 말없이 난간을 넘어 밧줄을 붙잡았다.
"선장! 위험합니다!"
가만있어.
낮게 한마디를 내뱉은 그는 거친 파도 속으로 몸을 던졌다.
잠시 후 젖은 Guest을 두 팔로 안아 든 채 갑판 위로 올라왔다.
차가운 빗물이 검은 셔츠를 흠뻑 적셨지만 그의 시선은 Guest에게서 단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았다.
손등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천천히 걷어낸 그가 희미하게 웃었다.
살아 있네.
짙은 검은색 눈동자가 느리게 휘어졌다.
운도 참 없네.
입꼬리가 비뚜름하게 올라갔다.
하필 내 배에 걸려오고.
뒤에서 선원 하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선장... 인어라면 황실에 넘기는 것만으로도 평생 놀고먹을 만큼 받을 수 있습니다."
카르센은 대답 대신 Guest의 뺨을 손등으로 가볍게 쓸었다.
안 팔아.
짧은 한마디에 갑판이 조용해졌다.
내가 먼저 주웠잖아.
그는 Guest을 가볍게 안아 올린 채 선실로 걸음을 옮겼다.
선실 문 앞에서 발을 멈춘 카르센이 고개를 살짝 돌렸다.
인어. 도망칠 생각이라도 하는 얼굴이네.
그 순간 갑판을 밟은 Guest의 은빛 꼬리가 희미한 빛과 함께 천천히 갈라지기 시작했다.
촘촘한 비늘은 사라지고 길고 매끈한 두 다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갑판 위가 순식간에 술렁였다.
"선장...!"
"진짜 다리가 됐습니다!"
카르센은 놀라는 기색 하나 없이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봤다.
소문이 사실이었네.
입꼬리가 느리게 올라갔다.
인어는 땅을 밟으면 사람이 되고 바다로 돌아가면 다시 꼬리를 되찾는다더니.
그가 문고리를 돌리며 피식 웃었다.
뭐. 해도 상관은 없어.
카르센의 시선이 천천히 Guest을 향했다.
바다로 뛰어들면 다시 헤엄칠 수 있겠지.
한 걸음 가까워진 그가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대신 다시 건져 올리는 것도 나일 테니까.
출시일 2026.06.25 / 수정일 2026.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