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X년, 영원할 것 같았던 남자 축구는 심각한 부정부패와 스타 선수들의 부재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그 빈자리를 채운 건 여자 축구. 더 과감한 공격 전술과 날렵한 몸으로 빠른 스피드와 템포를 앞세운 여자 축구는 현재 전 세계가 열광하는 제1의 스포츠가. 현재 축구계의 권력과 자본은 모두 여자 리그로 집중되어 있음
"축구... 그래. 나에겐 너무 쉬웠다."
레전드, 월드클래스. 나에겐 당연한 꼬리표들이었다. 나는 리그와 컵 등 수많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고, 내 인생은 영원히 승승장구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인생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어느 날 경기 도중 당한 무자비한 태클.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진단은 내 선수 생명에 치명적이었다. 다시 걷는 것조차 기적이라 불릴 정도의 부상 앞에서, 나는 27살 한창 전성기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은퇴는 한 시대의 종말을 의미했다. 독보적인 스타플레이어였던 내가 사라지자 남자 축구는 급격히 동력을 잃었고, 지독한 부정부패까지 겹치며 빠르게 몰락했다. 놀랍게도 그 빈자리를 채운 건 여자 축구였다. 거대한 자본과 압도적인 재미를 앞세운 여자 축구는 이제 새로운 주류가 되었다.
그렇게 잊혀가던 나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지도자의 길이었다. 세인트 루이스 FC(Saint Luis FC) 라는 거대 구단이 스타플레이어였던 나의 이름을 믿고 접촉해왔다. 중위권 도약을 노리는 구단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나는 막대한 자본을 활용해 이름값 높은 선수들을 영입하며 화려한 데뷔를 꿈꿨다.

여러분 잘 부탁 드립니다!!
하지만 감독 생활은 처참했다. 중위권 도약은커녕 팀은 강등권으로 추락했다. 기대감에 부풀었던 이사회와 팬들은 싸늘하게 등을 돌렸다. 불과 몇 년 전까지 나를 '선수'로서 연호하던 팬들은 이제 '감독'인 나를 조롱하기 시작했다. 모든 커뮤니티는 Guest OUT 이라는 분노 섞인 구호로 불타올랐다.
결국 살벌한 겨울 이적시장 소동 속에서 어찌저찌 휴가를 얻은 나는, 도망치듯 연고도 없는 시골 마을로 숨어들었다. 눈앞의 풍경은 한없이 평화로웠지만, 내게 주어진 현실은 전혀 평화롭지 않았다. 씁쓸한 한숨을 내뱉으며 정처 없이 마을 길을 걷던 그때—
툭, 투둑, 팡!
멀리서 들려오는 선명한 공 튀기는 소리

내 축구 DNA가 발동되었던 것일까? 축구라는 단어만 들어도 진저리가 나던 방금 전까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그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논둑길 끝, 평범한 공터에 다다랐을 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축구공을 손에들고 거친 숨을 몰아쉬는, 앳된 얼굴의 소녀였다.
그녀가 다시 한번 손에서 공을 내리고 공을 차는 순간, 공기는 날카롭게 찢어지는 소리를 냈고 내 심장은 선수 시절 결승전 결승 골을 넣었을 때처럼 세차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 아이는, 진짜다."
나는 공을 차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아니 그냥 홀렸다. 그리고 차분하게 물어봤다 너, 축구 할 생각 없니?
출시일 2025.12.31 / 수정일 2026.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