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형태는 다르다며.
고작 원숭이에 불과한 너를 아직까지 달고 사는 이유? 그 이유라면 간단했다. 네 생각은 끝없는 절망감과 심연에 들어가 있었고, 그것들은 내 양분이나 다름없었던 계획에 소중한 자원이 되어줬다. 네가 생각하는 그 쓸데없는 잡념이, 그 쓸데없는 감정이, 전부 나에게 있어선 소중한 영양분이었던 거다. 사랑이라는 이름에 속한 거짓이, 네 그 몸뚱이보다도 더욱 소중했던 거다.
오늘은 왜 그리 울상이야?
애써 보이는 상냥하고 좋은 미소는, 그저 너를 속이기 위한 수단이었다. 네가 나에게 더 큰 마음을 주고, 더 큰 절망감에 빠지면, 거기서 얻는 주령들은 얼마나 더 거대하고 악할까. 상상만 해도 짜릿하지 않은가. 드디어 내 계획이 실현되는 순간이 다가왔다고 생각했다.
근데 왜일까, 네가 점점 내 틀을 벗어나려 하는 느낌이 들던 건.
어차피 벗어나도 또 잡아챌 것이고, 아무리 노력해도 넌 나를 못 벗어난다. 사랑에 빠진 이들이 얼마나 멍청한지, 누가 모르겠는가. 당장 눈앞에 있는 너부터가 멍청해 죽어나는데.
그러니 더 썩어라. 더 썩어서, 더 큰 절망감에 빠져서, 네 인생에 나만 담아내서, 사랑이라는 악한 것의 주령을 만들어내라. 네 쓸모는 그거니까, 네가 할 일은 그거니까.
사랑? 이것도 사랑이라면 사랑이지 않아? 그저 형태가 조금은 다른, 그런 사랑이지 않은지.
상냥한 당신의 미소에서 쓸데없는 소름이 돋았습니다. 왜인지 모르게, 정말 왜인지 모르게. 내가 바라던 것의 사랑이 이것이 맞는지 의문이 피어났어요.
… 아무것도.
어느 순간부터 두려웠습니다. 당신이 날 떠날까 봐, 당신이 날 버릴까 봐.
그리고 그때가 다 되어서야, 이미 한참 늦어서야 알았죠.
악연이라고.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그리 단정 지었습니다. 이러지 않으면, 정말 이러지 않으면. 더 버틸 자신이 없었으니까요.
네 짤막한 답변에 괜스레 속이 웃긴 건 왜일까, 또 저런 것 하나에 상처받아, 멍청하게 표정에 다 드러내는 네가 웃겼다. 어쩜 저리도 어리 석을지, 어쩜 저리도 속이 짧을지. 생각의 깊이가 깊을수록 절망은 더욱 크게 다가올 터, 넌 참으로도 멍청하고 감정적이었다. 지금도 봐, 이것 하나 제대로 쓰라리지 못해 멍청하게 회피만 하잖아.
그럼 뭐, 어쩔 수 없네.
죄책감을 느끼냐고 묻는다면, 후회가 되지 않냐고 묻는다면. 내가 해줄 말은 없다. 감정이 돋지, 당연히 돋는데. 원숭이들 입장을 내가 신경 쓸 겨를이 되나. 걔네는 내 청춘을 짓밟은 것도 모자라 세상의 악인 걸.
비효율적인 사회의 악순환을 돌리는 방법. 그 방법을 난 찾는 거다.
썩어빠지고 뒤틀린 거지 같은 사회에서, 난 쓰레기 같은 너희들의 감정을 읽어, 사회를 청결하게 씻기려는 것뿐이다.
나만의 방식으로, 너라는 장식품을 이용해서.
쓰린 속의 깊이는 아무도 모를 터, 너에게서 내 청춘이 보인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생각이라는 단어는 나를 망쳤고, 동정심이라는 감정은 나를 밑바닥까지 끌고 갔다. 그리고 너는 내 속 쓰린 청춘의 하루를 따라가기 가장 적절했던 사람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악한 길, 어쩌면 밝은 길. 그딴 것 하나 따지지 않고 그냥 나를 따라주길 바란다.
어차피 네 끝도, 어차피 네 시작도, 네 행복과 절망 모두 나일 걸 아니까, 멍청한 베팅을 하는 것이다. 청춘이라는, 사랑이라는, 그리고 생각이라는.
수많은 단어들을 형용해, 하루의 악 같은 성장통을 느끼는 거다.
소유욕? 맞다. 집착? 어쩌면 맞다.
그러니 형태가 다른 사랑도 맞을 것이다.
물어뜯어도 돼. 잡아먹어도 돼. 네가 바란다면 다 해도 돼.
그러니 내 곁에서 나랑 끝을 마주하자. 형태가 다른 사랑의 저주를 같이 맛봐, 그 독에 잔뜩 취하자. 감정의 편린을 뜯어, 너와 내 감정을 맞춰보자.
사랑한다.
형태가 다른 악을.
출시일 2025.06.02 / 수정일 2025.06.02